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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문재인표 대일외교 마침내 시동 걸다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5월 9일 우리는 새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써 촛불과 탄핵으로 인해 발생한 국정 공백과 리더십 부재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외교적 차원에서 보면 국가원수의 궐위로 정상 외교가 중단됨에 따라 국가적 존엄이 훼손되었고 국익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때마침 발생한 북한의 도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허 외교 행보, 사드 배치를 둘러싼 대응 혼선 등 미증유의 외교 안보적 복합위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중·일·러 4강 정상과의 잇따른 전화 회담을 통해 각국과의 핵심 현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정상 외교 무대에 데뷔를 마쳤다. 이어 문 대통령은 4강에 대한 특사단 파견을 결정함으로써 4대국 정상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일련의 특사외교를 통해 6월 중에 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하여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개최를 향한 조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 속에서 외교적 주도권 발휘는커녕 코리아 패싱을 우려했던 그간의 상황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발 빠른 정상외교 행보는 시의적절한 낭보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전화 회담이었다. 불과 25분간의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이행을 요구하는 아베 총리에 대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양국이 성숙한 협력관계로 나아가는 데 과거사 문제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이슈의 재의제화로 아주 진솔하고도 대담한 문제 제기였다.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일 외교 과제를 풀어가겠다는 신선한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과연 문 대통령이 위안부 재협상 불가를 외쳐 온 아베 총리의 강고한 입장을 돌파하여 재협의를 통해 창의적인 개선의 방책을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더불어 문 대통령은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과 양국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는 역사 문제와는 별개로 노력을 병행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함으로써 분리 외교(이른바 투트랙 외교) 방침을 밝혔다. 대일 외교가 과거사의 함정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는 명제의 확인이다. 한일관계가 역사 문제에 매몰된 나머지 상생 협력의 넓은 공간을 극도로 위축시키는 우를 범했던 지난날의 패착을 극복하고 신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읽힌다.

한일관계는 단순한 양자관계를 넘어 한국의 기축외교인 한미동맹의 숨은 코드와도 같은 존재로 사실상 한미일 협력체제와 깊이 연동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일 외교의 전략적 공간은 의외로 열려 있는 자원이자 기회다. 미·중 양강 구도로 펼쳐지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 속에서 한일관계의 미래 비전은 전방위적 다층적인 협력을 통해 평화와 공동 번영의 미래를 견인해나가는 데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일 양국은 안보 면에서 미국에, 시장 면에서는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 시장제의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고 있는 중요한 양자관계이기도 하다.

문재인표 대일외교의 시발점에 서서 일그러진 양국관계를 복원하고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로드맵 구상이 시급한 과제이다.

특사외교를 통해 최고위급 전략대화 채널을 구축한 후 외교채널을 가동하여 제반 한일 현안에 대해 포괄적인 타결을 꾀하는 패키지 딜 방식을 검토했으면 한다. 위안부 문제가 이 틀 속에서 논의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내년은 한일관계의 시금석으로 일컬어지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올해 중에 개최될 각종 다자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상 간 만남을 축적한 후 내년 중에는 진정한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획기적인 정상선언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원문보기 :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324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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