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장기소액 채무탕감과 새출발 기회 / 윤정선(파이낸스·회계학부) 교수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서민정책과제 중 하나로 장기간 연체된 소액 채무의 탕감을 들 수 있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탕감 대상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 중 연체기간이 10년 이상이고 규모는 1000만원 미만인 채권이다. 이러한 조건에 해당되는 금액은 총 2조원 정도, 개인 평균 450만원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소득이 5000만원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큰 액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십만명의 서민이 10년 이상 신용불량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역대정권들이 장기신용불량자에 대한 채무조정 혹은 채무탕감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하여 신용대출 연체자의 채무를 탕감하거나 분할상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 조치를 들 수 있고, 그 이외에도 지속적은 노력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역대정권의 노력은 채무조정이 금융시장에서 유발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밀려 용두사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도덕적 해이라고 함은 채무탕감이 일단 이뤄지고 나면 학습효과로 인해 채무자들 사이에 장래에 다시 채무가 탕감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돼 채무상환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처지이면서도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해 온 채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빈발하는 채무조정으로 인해 저신용 서민층이 금융시장에서 더욱 소외되거나 고금리를 적용받게 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도 채무조정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는 요인이 되어왔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채무탕감정책에 대해서도 이미 상당수 전문가들이 마찬가지의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경제학적인 논리만을 강조한다면 빈번한 채무조정이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저소득층의 금융소외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벗어날 수 없는 빚의 굴레에서 고통 받는 경제적 약자들의 재기를 돕고 더 나아가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이다. 다행히 현재 추진되는 채무탕감의 전제조건을 보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우려가 다소 완화될 수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채무탕감의 적용 대상이 10년 이상의 장기연체 채권이고 평균 규모 또한 1인당 국민소득의 1/5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다. 게다가 역대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채무조정절차가 거의 상설화단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채무변제에 충분한 자산을 보유했거나 경제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람이라면 굳이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10년을 모두 채워 채무탕감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느니 채무조정절차를 통해 조기에 신용불량자 신분을 벗어나는 것이 실익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탕감대상채권이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임을 고려하면 형식적으로는 채권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소멸시효가 완성단계에 있는 채권의 비중이 높을 것이라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이번 채무탕감이 향후 금융기관들이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을 축소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제 남은 것은 정책시행과정에서 은닉재산을 철저히 조사하는 등 부당한 수혜의 소지를 차단하고, 소멸시효가 완성에 가까운 채권을 선별하여 탕감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경제적 논리에 따르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자세이다. 모쪼록 장기간 지속돼온 경기침체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빚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장기 신용불량자들에게 이번에 추진되는 채무탕감계획이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원문보기 :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7062002102351607001

이전글 4차산업혁명 시대, 익스텔리전스에 주목해야 한다 / 최정욱(경영학부) 교수
다음글 울렁증과 자신감 회복 / 이의용(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