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코로나 이후, 도시는 전진한다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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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학생들을 대면하지 못하고 랜선 너머로 만나고 있다. 담당하고 있는 과목의 특성상 서로가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중요한지라 녹화 강의보다는 화상 채팅을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 반드시 나쁘다고 할 것만은 아니어서 장소에 상관없이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된다. 가끔 예기치 않게 뛰어드는 학생의 고양이 정도는 수업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과제를 같은 화면에 띄우고 토론할 수도 있고 출석 확인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에 예약하고 자동으로 등록이 되기 때문에 수업은 1분도 늦지 않고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눈을 마주하며 하는 수업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 듯하다. 우선, 초고속 인터넷이라지만 약간의 지연이 있고 그 미세한 시차가 뜻밖으로 큰 장애가 된다. 특히 토론식 수업에서는 어색하다. 말할 때마다 매번 멈칫하게 되니 대화는 곧 끊기고 중간에 상대가 듣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반복된다. 둘째로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점이다. 대화나 토론이라는 것이 음성이라는 파동의 단순한 교환 이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순간에 스쳐 가는 자신감이나 난감함 같은 작은 표정을 놓치게 된다. 몸짓이나 표정, 심지어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작은 제스처는 얼마나 소중했던가. 다른 하나는 역시 몰입의 정도이다. 시야를 가득 채우던 강의실은 작은 화면의 배경으로 물러서고 그마저도 일부를 보여준다. 학생들은 증명사진 크기로 축소돼 모니터에 정렬되는 모습이 가상현실(VR) 연구자들이 참고할 만한 실험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느낌이다. 가히 코로나 특이점이라 부를 만하다. 특이점이란 수학, 물리학에서 시작돼 사회적 현상에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진 개념이다. 대개 두 가지 조건으로 판별할 수 있는데 첫째로 이제까지의 기준이 더는 적용되지 않을 때, 둘째로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변화가 큰 경우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분명 우리는 코로나 특이점을 지나고 있다. 특이점 이후의 세상, 즉 모든 급격한 변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뉴노멀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텅 빈 거리나 구내식당의 투명 칸막이는 뉴노멀에서 도시가 지속할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도시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건축의 관계가 밀접한 정주 형식이다. 권고이기는 하지만 ‘격리’나 ‘거리두기’는 그 밀접함이 외려 위험해지고 반갑게 만나서 인사하는 이웃을 잠재적인 바이러스 전파자로 간주하고 경계해야 하는 세상의 기준이니 뉴노멀에서 도시는 위태롭다. 알려진 대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도시에 흑사병이 돌자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한 열 명의 남녀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 한 편씩 열흘간 이야기한 것을 모은 형식이다. 지금보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 말기의 일이었다. 이후로 도시는 감염병을 견뎌냈고 르네상스라는 도시문화의 꽃을 피웠다. 산업혁명 이후 몰려든 노동력으로 도시는 매연과 질병으로 고전하지만 다시 회복했으며, 자동차의 등장으로 위협받을 때도 2차대전 이후 미국에서처럼 도심이 슬럼으로 변하고 교외로의 탈출이 이어진 이후에도 도시에는 다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살아남았고 번성했다. 뉴노멀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암울한 재난 영화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일지, 어릴 적 꿈꾸던 것처럼 화사한 희망의 공간일지는 알 수 없다. 희망의 유토피아에 나의 한 표를 던진다. 도시는 지난 6000년 동안 인류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항상 문제가 아닌 해결의 수단이었다는 영국의 도시학자 존 리더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입시를 견디며 대학생이 되고도 아직 캠퍼스에 발을 들이지 못한 신입생을 생각하면 안쓰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우리 시대의 데카메론을 쓰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뉴노멀 시대에도 여전히 따뜻한 접촉이 가능한 도시를 그리게 될 것이며 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공간을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도시는 전진한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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