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잘한다 싶으면 ‘골프 천재’ 남발… 과한 칭찬이 재능 죽였다 / 최우열(체육학부)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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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골프천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조기입문·집중훈련‘우즈 효과’ 별 생각없이 갖다붙인 수식어 유망주들 장래 망가뜨릴수도 실력보다 노력 칭찬받은 선수 실패 두려워 않고 도전 즐겨 전성기때 우즈 매일 6시 기상 하루 12시간 스윙연습 몰두 천재는 상업주의가 만든 허상
영국의 클래식 전문 방송 클래식 FM이 선정한 클래식 음악계 역대 천재 순위에서 한국인 장영주가 모차르트, 베토벤, 아르헨티나의 마르타 아르헤리치, 칠레의 클라우디오 아라우에 이어 당당히 5위에 올랐다. 4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그녀는 8세 때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데뷔, 이후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했다. 음악계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어린 대가들이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하지만, 가끔 음악계보다 천재가 더 자주 나오는 분야가 바로 골프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린 나이에 조금만 좋은 성적을 올리거나 두각을 나타낸다 싶으면 언론에서는 발 빠르게 골프 신동, 골프 천재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한국 골프계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한 명씩 천재가 탄생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김대섭, 김경태, 김혜동, 한승수, 허인회, 노승열, 김시우, 김송희, 신지애, 장하나, 김효주, 최혜진, 미셸 위, 리디아 고, 이민지, 양자령 등등 일일이 이름을 대기에도 벅찰 정도다. 웬만한 골프선수치고 왕년에 천재 소리 한번 듣지 않은 골퍼는 거의 없을 듯하다. 이렇듯 천재란 수사가 남발되다 보니 한국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왕년의 골프 천재’ ‘비운의 골프 천재’도 유달리 많다. 골프에서 천재 타령이 일상화된 것은 이른바 ‘타이거 우즈 효과’ 때문이다. 2세 때 처음 골프 클럽을 잡은 우즈는 화려한 주니어선수 시절을 거쳐 스무 살에 프로에 데뷔, 이듬해 역대 최연소로 마스터스 챔피언에 오르면서 골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즈의 성공 이후 가급적 어린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 집중적인 훈련과 치열한 경쟁을 거친 후 10대 후반에 프로에 뛰어드는 것은 하나의 공식이 됐다.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 호주의 제이슨 데이, 미국의 패트릭 리드, 조던 스피스 등이 우즈의 영향으로 등장한 대표적인 타이거 키즈들이다. 한국은 특히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조기교육 열풍까지 더해져 그 정도가 더 심한 편이다. 한창 공부하며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아이들은 지겨운 연습과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다. 일찍 자기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을 꺾고 우승을 한다고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단지 남들보다 일찍 골프를 시작해 더 많이 훈련한 ‘선행학습’의 당연한 결과이거나 착시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야 별생각 없이 갖다 붙이는 천재란 수식어가 자칫 골프 유망주의 장래를 망칠 수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의 캐럴 드웩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을 칭찬하는 것은 은연중에 성공에서 차지하는 재능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실패를 자신의 재능 없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겨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쉽게 좌절한다. 그뿐만 아니라 실패를 피하려고 새롭고 어려운 도전을 꺼려 결과적으로 성장이 더디게 된다. 반대로 재능보다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즐기며 노력을 지속하게 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실험의 결과다. 천재란 과한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되는 셈이다. 우즈의 성공 신화도 알고 보면 전형적인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예다. 어려서부터 골프를 잘 친다고 해서 선수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천재들의 역사에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훨씬 더 많은 수의 이름 모를 천재는 기록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공의 원인을 타고난 재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작 당사자에겐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성공 뒤에 숨은 자신이 쏟아부은 엄청난 땀과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의 아이콘 모차르트가 제대로 된 작품을 비로소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피아노 협주곡 9번을 작곡한 스물한 살 때부터다. 물론 스물한 살도 적은 나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18년 동안 혹독한 훈련과 교육을 거친 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 시절 연습장에 누구보다 일찍 나와 가장 늦게까지 림을 향해 슛을 던졌고,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가 비시즌 때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하루 12시간 공을 때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국의 골프 천재는 언론의 상업주의와 호들갑이 낳은 허상에 가깝다. 천재란 결코 호명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시험을 거쳐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스포츠심리학 박사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111201032839000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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