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거리·풍향 측정하는 것도 능력… ‘캐디 의존증’ 벗어나라 / 최우열(체육학부) 겸임교수

디지털 치매와 골프 치매

英 골프장 거리표시 목 없어 자기 눈·감각으로 직접 측정 기량 가늠하는 요소에 포함 주말골퍼, 캐디없는 곳 가면 기초사항까지 묻는 습관탓에 그린공략 등은 아예 엄두못내 때때로 도움 받을수 있지만 주체는‘나’망각해서는 안돼

 

“구글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Is Google making us stupid)?” 미국의 언론인이자 인기 작가인 니콜라스 카가 지난 2008년 한 잡지에 발표한 도발적인 제목의 글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을 급격하게 바꿔 놓고 있다. 1450년 독일의 구텐베르크에 의해 금속활자 인쇄술이 탄생한 이후 500년 넘게 지식의 저장과 보급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쳐온 문자와 책의 자리를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스마트폰이 대체하고 있다.

빅데이터 혁명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이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일일이 밑줄을 그어가며 한 권의 책을 다 읽는 수고 대신에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과거보다 더 똑똑해졌을까? 

카의 주장에 따르면 그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이 카의 경고다. 일일이 정보와 지식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 시대에 PC와 스마트폰 등 첨단 정보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인지 활동과 관련된 인간의 뇌 기능과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줄줄 외우던 가족이나 친구들의 전화 번호나 생일 같은 간단한 정보조차 스마트폰이 없으면 백지상태가 된다. 표지판만 보고 잘도 찾아다니던 길도 이제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헤매기 십상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를 제대로 읽기보다는 대충 훑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고, 그래서 긴 글이나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적으로 깊이 사고하고, 분석하고, 통찰하는 능력 또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카의 진단이다. 요즘 젊은 나이에도 건망증이나 집중력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모두 이런 까닭 때문이다. 이른바 ‘디지털 치매 증후군’이다.

영국의 골프장에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거리 표시 목이 없다. 페어웨이에 그린 중앙까지의 거리를 표시하는 관행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영국의 골퍼들은 자신의 눈과 감각으로 직접 거리를 측정하는 능력도 골퍼의 기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여긴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있는 거리표시마저도 잘 보지 않는 주말골퍼들이 대부분이다. 클럽 선택에 필요한 목표까지의 거리를 그냥 캐디에게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거리뿐이 아니다. 골퍼들은 코스 공략 방향이나 바람의 세기와 방향, 그리고 피해야 할 해저드의 위치 등 라운드에 필요한 기초적인 사항까지 대부분 캐디에게 의존한다. 그린에 공을 올린 후에도 자신의 공을 마크도 하지 않은 채 캐디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는 골퍼가 많다. 마크마저 캐디에게 맡기는 분위기이니 골퍼가 직접 그린을 읽거나 퍼트 라인을 결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렇듯 모든 것을 캐디가 알아서 다 해주다 보니 자신의 스코어도 제대로 세지 못하는 골퍼까지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간혹 캐디가 없는 퍼블릭 골프장을 찾거나 해외의 골프장에서 라운드라도 할라치면 대부분 허둥대거나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평소 지나치게 캐디에게 의존하는 습관이 골프 치매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올해부터 골프 규칙이 대폭 바뀌면서 공식 대회에서도 이제 거리측정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규칙 변경 이전에도 일반 주말골퍼 중에는 이미 GPS 기반의 거리측정기나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눈으로 거리를 판단하는 골퍼의 능력은 앞으로 더 퇴화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라운드 중 캐디에게 적절한 정보와 도움을 받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캐디는 어디까지나 경기의 보조자일뿐 라운드의 주체는 골퍼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새롭게 바뀌는 골프 규칙 중에는 골퍼가 공 앞에서 샷을 준비할 때 목표 조준과 정렬을 제대로 했는지 캐디가 확인하는 걸 금지하는 항목도 있다. 이 역시 골퍼가 연습을 통해 갖추어야 할 기본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혹시 자신도 그동안 캐디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른 여가활동에서 느낄 수 없는 스포츠의 진정한 매력은 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신의 본능과 감각을 이용해 맨몸으로 자연이나 경쟁자에 맞서는 것에 있다. 거리나 라이에 따른 공략 방법을 특별히 고민할 필요 없이 공만 똑바로 때리면 되는 스크린골프가 제아무리 실감 난다 해도 실제 라운드에 훨씬 못 미치는 이유다.

새해에는 그린을 노리기에 앞서 직접 눈으로 목표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고 그린의 경사도 직접 읽으며 자신의 퍼트 라인을 결정하는 시도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12801032839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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