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좋은 플레이 위해”라지만… 상대는 리듬 잃어 경기 망치기도 / 최우열(체육학부) 겸임교수

‘내로남불’ 늑장 플레이

디섐보,샷 한번에 1분 이상 
퍼팅에 5분 가까이 끌기도 
골프 관계자들 일제히 비난 

올해 바뀐 규칙들 ‘속도’초점 
공 찾는 시간 5분서 3분으로 
‘늑장’으로 유명했던 케빈 나 
빨라진 플레이로도 통산 2승

얼마 전 끝난 유럽프로골프투어 두바이데저트 클래식에서 우승한 미국의 브라이슨 디섐보가 늑장 플레이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거의 모든 샷마다 1분 이상씩 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7타 차로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마지막 홀 버디 퍼트를 하는 데에만 1분 넘게 시간을 끌었다.

디섐보의 답답한 플레이에 경기를 지켜보던 많은 골프 관계자는 하나같이 비난을 쏟아냈다. 1999년 디오픈 챔피언인 스코틀랜드의 폴 로리는 SNS를 통해 디섐보가 샷을 한 번 하는데 무려 1분 14초씩 걸렸다면서 벌타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US오픈 챔피언인 미국의 브룩스 켑카도 한 매체를 통해 “어떻게 골프공 하나를 치는 데 1분 20초나 1분 15초씩 걸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두 개의 클럽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투어에서 늘 있는 일이지만 동반자가 플레이하는 동안 얼마든지 모든 계산을 마치고 샷을 준비할 수 있다면서 디섐보를 비난했다.

디섐보의 늑장 플레이가 비단 이번 대회에서만 문제가 된 게 아니다. 지난해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는 퍼팅하는 데 무려 5분 가까이나 시간을 끌었고 경기를 중계하던 ‘골프 전설’ 자니 밀러(미국)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디섐보와 함께 경기했던 스웨덴의 헨리크 스텐손은 3라운드 내내 선두를 달렸으나 디섐보의 느린 속도에 리듬이 흔들리는 바람에 마지막 날 우승을 놓쳤다.

디섐보의 플레이가 이처럼 느린 이유는 샷마다 지나치게 많은 분석을 하기 때문이다. 샷을 하기 전 캐디와 쉴 새 없이 정보를 교환하면서 바람은 물론 공기 밀도와 탄도까지 고려해 공이 날아가는 정확한 거리와 구르는 거리를 계산하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히기도 했다.

디섐보 외에도 투어에는 늑장 플레이로 악명 높은 골퍼가 많다. 2017년 미국의 한 골프전문 매체가 PGA투어 선수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벤 크레인, 조던 스피스(이상 미국), 제이슨 데이(호주), 그리고 재미교포 케빈 나(나상욱) 등이 플레이가 느린 선수 1∼4위로 꼽혔다. 순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웨브 심프슨, J B 홈스(이상 미국)도 늑장 플레이로 입방아에 자주 오르는 대표적인 골퍼다.

문제는 대부분의 늑장 골퍼들이 자신의 플레이가 늦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섐보 역시 골프는 자신에겐 생계가 달린 일로 45초 만에 샷을 끝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팬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절차라며 자신의 플레이를 옹호했다.

프로는 물론 일반 주말골퍼들 역시 자신의 플레이 속도가 평균보다 빠르거나 적어도 평균에 가깝다고 믿는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골퍼의 95%는 자신은 평균 혹은 평균 이상으로 플레이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다른 골퍼들에 대해서는 56%가 평균보다 느리게 플레이한다고 응답했다. 대다수 골퍼에게 늑장 플레이는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이처럼 객관적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항상 평균 이상으로 좋게 생각하는 심리적 편향을 심리학에서는 ‘레이크 워비곤 효과(lake wobegon effect)’라고 부른다. 레이크 워비곤은 미국의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상상 속 마을로, ‘이 마을에 사는 여자들은 모두 강인하고 남자들은 한결같이 잘생겼으며 아이들은 모두 평균 이상’이란 대사로 항상 프로그램이 시작된 데서 유래했다.

2019년 바뀐 새 골프 규칙의 주요 골자는 무엇보다 빠른 경기 진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 찾는 시간을 5분에서 3분으로 줄이고, 그린에서 깃대를 뽑지 않고 바로 퍼팅을 할 수 있으며, 공이 굴러 내려가 다시 드롭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드롭 높이를 무릎 높이로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종전 에티켓이던 경기 속도를 정식 규칙에 포함하고 40초 이내에 스트로크를 하며, 플레이 속도 향상을 위해 플레이 순서도 홀까지 거리와 관계없이 안전이 확보된 상태라면 준비된 사람부터 먼저 플레이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전체 라운드 시간 중 실제 순수한 플레이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걸어서 이동하기, 클럽 선택, 연습 스윙 등 플레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활동에 쓰인다. 달리 말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경기 속도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샷을 한 후 다음 샷 위치까지 되도록 빨리 이동하고, 캐디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 얻어 다음 샷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생각하며,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즉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클럽을 들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빠른 플레이의 요령이다. 또 연습 스윙은 한두 번만 하는 등 스윙 전 준비 동작(루틴)은 되도록 짧게 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늑장 플레이로 유명했던 케빈 나는 2016년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서 1시간 59분 52초 만에 18홀을 끝내 비공식 최단 기록을 세운 바 있다. 함께하기로 돼 있던 제이슨 데이가 허리 통증으로 갑자기 기권하면서 혼자 라운드한 결과이긴 하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경기 속도를 줄일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이날 케빈 나는 4라운드 중 최고 성적인 이븐파를 기록했으며, 특히 마지막 4개 홀에서 4연속 버디를 잡기까지 했다. 빨라진 플레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는 2018년 밀리터리 트리뷰트 앳 더 그린브라이어에서 6년 9개월 만의 감격스러운 PGA투어 통산 2승을 거뒀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21801032839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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