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 전,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분리 법안 등 3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분리 등 집권 여당이 사법 개혁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려다 보니 소수 정당들의 협조가 절대적이었고, 이를 얻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과 연계해 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동시에 열어 모두 패스트트랙에 올린 것이다.
이에 대한 찬반은 각자의 이념과 지지 정당에 따라 다를 것이니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제1 야당을 제외하고 소수 정당들과 야합해 선거법 개정을 숫자로 밀어붙인 것은 과거 문재인 민주당 대표 시절에도 그토록 강조했던 원칙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란 점과 국민이 반대하는 의원 정수 확대 없이 비례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던 점은 지적받아야 한다.
헌법 제41조 2항은 국회의원 정수를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200인 이상이라는 제한과 함께 의원 정수를 법률로 정하도록 한 취지는 최소대표의 의미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300인 이상으로 하려면 헌법이 굳이 200인 이상을 규정하고 상한선을 두지 않은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원 수 300인을 초과할 경우, 헌법 불합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법 논의 과정에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은 여러 차례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를 의식한 여(與)4당은 한국당의 극력 반대에도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서도 절대로 의원 수를 늘리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의 강제 사·보임 등 우여곡절 끝에 야간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한 여4당은 곧바로 의원 정수 확대를 위한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민주평화당은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 이후의 전망과 과제’라는 국회 토론회를 열어 공개적으로 330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무소속이라지만 여권 성향인 이용호 의원은 무려 360석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왜 그럴까? 이번에 여4당이 합의한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50% 연동률에 권역별로 석폐율까지 도입된 복잡한 제도다.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여야 하니 일단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선거법이 그대로 순항하면 자신들의 지역구가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 걱정된 의원들이 너나없이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과 의회정치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누가 왜, 어떤 자격과 능력이 있어 비례대표가 되는지도 모르고, 일단 비례로 입성한 의원은 지역구를 배정받기 위해 당 지도부에 충성을 다하는 패거리 정치가 만연한 우리 국회에 적합한 제도가 아니다. 국민은 누굴 뽑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투표를 강요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4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불과 며칠도 지나기 전에 손바닥 뒤집듯 배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리할 때는 약속을 지키라고 아우성치면서, 불리할 때는 자신이 했던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여4당의 이번 행태는 대(對)국민 사기극이다. 만일 이번 선거법 개정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의원 정수를 확대한다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가.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507010731110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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