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홍성걸 칼럼] '분열의 DNA'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올해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곳곳에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국내외에서 모든 것을 바쳐 독립운동을 전개한 의사와 열사, 지사들을 기리는 많은 행사가 열렸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함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임정은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이었지만 광복이 될 때까지도 항상 갈등과 분열에 시달렸다.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아 애국지사들을 뒷바라지했던 정정화 여사가 쓴 '장강일기'(長江日記)를 보면 참혹했던 그 시절에도 애국지사들이 힘을 합치지 못하고 드러낸 참담한 분열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나라의 독립을 추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서로의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로 단합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일제의 탄압에도 단일한 행보를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위촉된 이승만은 1920년 겨울, 상해로 가서 정식으로 집정관총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제각각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고 싸우는 임정인사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불과 6개월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때의 경험에 따라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자신을 따르는 동포들을 중심으로 대한인동지회를 조직하면서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대한인동지회는 당시 하와이 이민사회에 조직되어 있던 대한인국민회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두 단체 사이에는 테러와 송사가 끊이지 않았다.

상해에 남은 김구에게도 임정과 뜻을 같이하지 못하고 떠나간 여러 애국지사들이 제각각 조직한 다양한 독립운동 집단들과의 통합은 근본 과제였다. 중일전쟁 발발 직후, 김구는 우파진영의 독립운동단체 만이라도 통합을 이루기 위해 자신 주도의 한국국민당, 조소앙이 이끌었던 한국독립당, 이청천의 조선혁명당과 미주의 대한인국민회와 대한인동지회를 연합해 1938년 8월 광복진선(光復陣線)을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김구는 왼쪽 가슴에 총탄을 맞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이후 백범은 김원봉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을 비롯한 좌파 4개 단체와의 통합하여 힘을 합해 항일운동을 추진하려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항일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우리 민족은 단합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려 했던 임정의 광복군은 준비되지 못해 때를 놓쳤고, 이후 신탁통치 선언과 남북분단으로 이어져 결국 다른 나라의 힘에 의해 독립을 얻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오늘날 정치권의 분열과 대립, 막말과 분노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뿌리 깊은 분열의 DNA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지 75년이 넘었음에도 친일파의 후예를 거론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상대를 독재자의 후예로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분열의 DNA가 있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조상까지 들먹여가며 부모 죽인 원수보다 더 심한 욕설과 망언을 퍼붓는 정치권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칭기스칸에 의해 통합된 몽골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정복국가를 이루었고, 누루하치에 의해 하나가 된 만주족은 자신들보다 100배나 인구가 많고 풍요로웠던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대청제국을 건설했다. 반면, 제국의 멸망에는 반드시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있었다. 로마가 그러했고 몽골이 그러했으며,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안보와 경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류사 신기술문명의 전개 등 내우외환 속에서 하나가 되기는커녕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노사, 노노, 이익집단 간 갈등과 분열이 첩첩산중이다. 법치주의는 찾을 수 없고, 오직 집권세력의 정의감과 그들의 가치만이 법이고 진리다. 이를 반대하는 어떤 의견도 용납되지 않으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나 독재자의 후예로 비난 받는다. 이런 나라의 미래가 어떠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분열의 DNA를 바꾸지 못한다면,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출처: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9061102102269660001&ref=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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