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Biz Prism] 휘둘리지 않고 편견 없는 생각…검증적 사고력을 키워라 / 백기복(경영학부) 교수

미국 대학 경영학 석사, 박사 과정에 입학하려면 반드시 GMAT(Graduate Management Aptitude Test)라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 시험은 언어와 수리 등 다양한 능력을 테스트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검증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을 테스트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Critical Thinking`을 한국어로 `비판적 사고력`이라고 번역해왔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판적`이라는 뜻보다 훨씬 넓고 깊으며 중차대한 의미가 있어 `검증적 사고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본다. 철학에서 검증적 사고력은 칸트, 마르쿠제, 헤겔을 거치면서 발달한 개념이다.

1910년 미국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이 능력을 `성찰적 사고력(Reflective Thinking)`이라고 불렀다. 그가 이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의 참된 목적이 돼야 한다고 설파한 뒤 1930년대부터 미국 교육의 중심을 이루게 됐다. 미국 산업계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검증적 사고력을 중시하게 됐다. 독자적 생각 없이, 또는 영혼 없이, 시키는 것만 하는 직원보다는 스스로 치밀하게 판단해 과업을 주도할 줄 아는 인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루에 대략 6만~8만개 정도 생각을 한다. 이들 대부분을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분석적·통합적으로 검증하면서 처리할 줄 아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검증적 사고력은 미국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역량으로 자리 잡게 됐다. 미국 구직자들은 이력서를 쓸 때나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의 검증적 사고 역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검증적 사고력이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관습이나 타인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무심 답습`이나 `묻지 마 선택`은 `생각의 노예`가 갖는 속성으로 검증적 사고의 적이다. 불확실성의 근원인 4차 산업혁명은 기업에 위기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답습과 묻지 마의 노예는 기업을 위기의 함정으로 내몰고, 검증적 사고력을 갖춘 생각의 주인은 기업을 기회의 땅으로 인도한다는 점이다.

둘째 특징은 `편견 없는 판단`이다. 이것은 수집하는 정보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검증해 활용하고 각종 대안을 편견 없이, 선입관이나 이념 없이, 분석·평가해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이먼드 거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1981년 저서(The Idea of A Critical Theory)에서 `이념은 인간 해방의 핵심 장애물`이라고 말하면서 검증적 사고에 `편견 없는 판단`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답정너`처럼 리더가 답을 정해놓고 구성원에게 자신이 원하는 답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구성원의 판단 자유를 속박하는 행위이며 검증적 사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리더는 자신의 생각을 잘 맞히는 구성원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편견 없이 이념에 속박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구성원들을 리더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검증적 사고의 셋째 특징은 다양한 견해를 융합해 자기 결론을 내는 것이다. 문제를 분석해 해답을 찾는 것을 뛰어넘어 특정 해답이 갖는 맥락적 의미를 다각도로 고려해 자신의 견해를 정하는 것이다. 음정·음색·음량을 자유롭게 융합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는 신시사이저처럼, 검증적 사고는 다양한 정보와 견해를 융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산출해낸다. 새로운 청량음료 개발을 담당하는 기업 연구개발(R&D) 부서 연구원이 단순히 `맛있는` 음료, 또는 `특색 있는 음료`를 개발하려고 한다면 검증적 사고력이 하수라고 할 수 있다. 상수의 검증적 사고력을 갖춘 연구원이라면 원가, 생산 능력, 법적 규제, 소비자 기호와 건강, 기존 제품과의 시너지 효과, 회사 전략과 이미지 등에 관한 정보를 면밀히 검증·합성해 가장 바람직한 제품을 고안해낼 것이다.

기업에서 사업부서는 10% 가능성만 있어도 투자하려고 하고 재무부서는 위험이 10%만 돼도 투자를 망설이도록 설계돼 있다. 사업의 이득과 위험(risk)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편견 없이 분석·평가·융합해 사업부서와 재무부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창출하는 것이 검증적 사고력이다.

검증적 사고는 `휩쓸림`을 막아주는 방파제다. 유행에 휩쓸리고 각종 온정에 휩쓸리며 이념에 휩쓸리고 이기심에 휩쓸리고 권력에 쉽게 휩쓸리는 21세기 한국인들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어책이다.

원본보기: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9/12/1083677/?a=1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이전글 '펭수세대'에게 어떻게 성경을 알릴 것인가? / 이의용(교양대학) 초빙교수
다음글 [아침을 열며] 공룡의 미래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