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국민논단―김동훈(국민대 교수·법학) ] 인권 침해하는 경쟁시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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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3. 15. - 국민일보 - 2주일 전에 사법시험 1차 시험이 있었다. 해마다 치러지는 시험이지만 이번 시험의 에피소드는 2시간20분이나 되는 수험시간 중 화장실 출입을 금함에 따라 용변이 급한 사람들을 위해 비닐봉지를 지급하고 특히 여성을 위해 통치마와 좌변기를 준비하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화장실 출입금지는 수십년간의 관행이었으나 이번에 교시당 수험시간이 길어진데다 특히 인터넷을 통로로 수험생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비닐봉지에 용변을 보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이를 인권침해라고 주장할 만큼 권리의식이 성숙했다면 나아가 이런 시험제도 자체에 더 큰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정확히는 응시자들에게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한 지필고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성적 순으로 배열,정원에 맞춰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는 경쟁선발시험은 선착순 달리기와 비슷하다. 학창시절에 교련 선생은 학생들이 군기가 빠졌다고 생각되면 자주 선착순 달리기를 시켰다. 운동장 끝에 있는 미루나무를 돌아서 달려오는 아이들 중에 선착순으로 10여명을 자르고 나머지는 다시 뛰어갔다 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첫번째에 정원 안에 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려온 내 앞에서 커트라인이 그어질 때 나는 하늘이 노래지는 절망감과 공포를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매년 원하는 학과에 지원했다가 아깝게 떨어져서 눈물을 머금고 재수학원으로 향해야 하는 학생들,커트라인에 0.1점이 모자라 다시 지긋지긋한 고시촌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험생들의 심정이 이러할 듯하다. 이러한 선착순 달리기와 같은 경쟁선발시험에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원래 시험이란 그 시험을 통해 시험 후에 종사할 일에 적합한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고 또 그러한 시험준비의 과정을 통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거나 각종 시험이 난무하는 우리의 오늘날 현실을 보거나 시험제도가 이러한 본래의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경쟁시험선발제도의 근본적인 메커니즘 때문이다. 일정한 시험요강이 주최측에 의해 발표되면 합격을 원하는 수험생들은 모든 사고의 중심이 어떻게 그 시험을 통과할 것인지에 집중된다. 시험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자신을 시험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수험생들의 사고,생활과 나아가 인격의 형성에 심각한 장애를 형성하게 된다. 합격에 따르는 이권이 크면 클수록,또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수험생들의 정상적인 사고와 생활 리듬은 깨지고 오로지 합격이라는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레 인격적인 면에서도 결함이 생겨나게 된다. 과도한 집착증,경쟁 스트레스,이기심과 공격적 성향,결과지상주의,창의력의 마비,피해의식과 보상심리,실패에 대한 불안감 등등. 사법시험 및 각종 국가시험제도에 의해 이른바 최고 엘리트를 선발해온 우리 사회에서 그 이면에 이러한 시험제도에 말려듦으로써 정상적인 자기 만족의 삶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하고 폐인이 되거나 평생을 좌절감과 열등감 속에서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시험 적합성이 뛰어나거나 운이 좋아 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한 이들도 시험을 준비하면서 얻은 상흔을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허황된 엘리트 의식,보상심리,경직된 사고 등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폐쇄성과 경쟁력 저하는 바로 이러한 시험에 의한 충원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흔히 시험제도가 없으면 대체 공정한 선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시험제도에 의지하기 때문에 시험 외에 다른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과거 은행이 부동산담보대출에 절대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능력을 기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요컨대 국가기관이나 대학 또는 사기업 등 선발의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시험제도를 남용하는 것은 그 대상자들의 자유로운 인격의 전개를 억압하고 시험의 객체로 전락시킴으로써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제는 선발의 주체들이나 그 대상인 국민,학부모,학생들이나 다같이 시험선발에 내재한 야만성,획일성,권위주의,통제주의 등 반인권적인 요소에 대해 숙고할 때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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