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 시평] 재일한인 민족교육 돕자(韓敬九/국민대교수·인류학)


2002. 8. 2. - 중앙일보 -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마는, 자식을 위한 헌신적 노력이나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자식에게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리라.

*** 해외동포의 애타는 마음

주위에 음덕(陰德)을 쌓거나 자식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에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재산이나 가업(家業)을 물려주거나 또는 소위 좋다는 대학, 좋다는 학과에 보내려는 부모가 훨씬 더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유산을 제대로 관리 못하는 자식도 있고 넉넉한 수입과 안정된 지위를 보장해줄 것 같기에 그토록 강요했던 자격이나 직업들이 갑자기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가슴을 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자식 교육에 대한 애타는 마음은 훨씬 더 심각하다.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백인들과 아예 피부색이 다른 재미 한인들과는 달리, 재일 한인들은 자식을 일본인으로 키우라는 압력과 유혹을 강하게 받아왔다.

일부 부모들은 경제적 부담과 대학입시 등에서의 차별을 감수하면서 민단이나 조총련계의 민족학교에 자녀들을 보냈다. 그러나 상당수 부모들은 경제적 곤핍 때문에 자식들에게 한국말이나 문화를 가르칠 여유가 없었다.

또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차별과 박해의 경험 때문에 자녀들에게 본명(本名)을 감추고 일본식 이름(通名)을 쓰며 일본인 행세를 하게 하여 차별을 피하려 했다.

일본학교에서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며 일본인으로 자라나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하기를 바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얼마나 곤핍과 차별이 심했으면 자신이 한인이라는 사실을 저주하면서 일본인이 되고 싶어했던 청소년들이 그리도 많았으랴!

그런데 이렇게 자라난 2세나 3세 중 상당수가 '민족학급'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형태의 민족교육과 접하면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나 직장에서 '본명 선언'을 하고 있다.

얼마든지 일본인으로 행세할 수 있지만 이들은 왜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있는 은근한 차별을 각오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회복하려 하는 것일까 ? 이들의 행동은 모국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본적 권리에 대한 확고한 자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일본사회를 한인뿐 아니라 부라쿠민, 오키나와인, 외국인 노동자 등 다른 소수민들도 차별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재일 한인들의 피차별 경험을 과거사와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인권문제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재일 한인 문제 해결은 모든 차별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며 재일 한인의 노력은 다른 소수민들의 권리를 신장하는 것이 된다.

그 때문인지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의 해외동포 생활문화조사와 관련해 오사카의 한인 밀집지역인 이쿠노쿠에 머무르면서 만났던 몇몇 민족교육 관련인사들은 모두 해맑은 얼굴에 자부심과 사명감이 넘치고 있었다.

*** 조총련계 학교 몰락 위기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민족교육의 취약한 물적.제도적 기반이다.'민족학급'은 오사카 지역의 90개 일본학교에서 방과 후에 특별활동으로 이뤄지는데, 제도적 보장 없이 학교장 재량으로 실시되고 있고 또한 담당 강사에 대한 처우도 열악하다.

한편,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전후 민족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조총련계 학교들은 북한의 지원중단과 재일 한인사회의 경제적 몰락, 학생수의 감소 등으로 상당수가 곧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재일 한인의 민족교육이 확대.발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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