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5·18은 국가폭력 맞선 민중항쟁” - 김영택(국사학과 박사과정 졸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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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국가폭력 맞선 민중항쟁” [경향신문 2005-08-17 20:15] “광주민중항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매듭을 짓게 한 역사적 이정표이다.” 1980년 5·18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박사 논문이 나왔다. 5·18 당시 현장을 지켜봤던 전 언론인 김영택씨(69)는 최근 국민대 국사학과에 박사학위 논문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를 제출, 통과했다. 지금까지 정치학·사회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5·18 연구는 일부 있었으나 역사학 쪽에서 박사논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1980년 5월18일 취재기자로 광주민중항쟁 현장에 뛰어든 김씨는 이후 27일 계엄군이 광주에 재진입할 때까지 10일간 현장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 이후 ‘10일간의 취재수첩’ 등의 저서 등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알려왔던 김씨는 1997년 대학원에 진학, 연구자로 변신했다. 이번 논문은 25년 전 목격하고 체험했던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5·18의 배경, 공수부대의 학살, 시민 자치 등 항쟁의 전개과정에서 진상규명까지 광주민중항쟁의 역사를 촘촘히 분석한 김씨는 5·18을 ‘신군부가 정권찬탈을 위해 광주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살인극’이라고 학문적 결론을 내린다. “많은 이들은 5·18이 ‘과격시위’에 대한 ‘과잉진압’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살육행위였습니다. 이는 18일 오후 4시쯤, 초동단계의 현장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시위할 의사도, 행위도 없는 신혼부부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구타한 것이나 저수지에서 멱을 감는 어린이에게까지 총격을 가한 일은 ‘진압’이 아닌 살인극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김씨는 신군부가 5·18을 사전 모의·조종했다는 정황을 곳곳에서 찾아낸다. 5월17일 56개대 학생회장단을 기습적으로 연행한 점, 18일 오후 3시30분 공수부대가 광주시내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공수부대가 밀리고 있다’며 다른 공수부대 투입을 명령한 점, 5·27 재진입을 앞두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공수부대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고 전남북계엄분소장에게 당부한 점 등은 그 중 몇가지에 불과하다. 이러한 신군부의 살인극에 대한 시민들의 대응은 ‘순진’했다. 김씨는 광주민중항쟁이 배후조직도, 지도자도 없이 전개된 점을 주목했다. “우리 역사상의 민중·농민봉기에서 무조직, 무지도자 상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1980년 광주에서 지도부가 없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요. 이는 민중운동사상 전례가 없는 사건입니다.” 수많은 증언과 목격담, 계엄군 자료 등을 바탕으로 5·18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한 김씨는 논문에서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기도 했다. 예컨대 공수부대의 시민들에 대한 발포 명령 시점을 그는 ‘21일 오후 1시’라고 말했다. 21일 공수부대가 시내에서 철수한 것도 ‘시민군의 저항에 후퇴’한 게 아니라 계엄군의 작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최후의 결전을 주장하며 강경노선을 고수했던 시민군내의 비타협주의자들에 대해서도 “계엄군을 상대로한 최후의 결전은 무모한 선택이었다”며 시민군의 온건노선을 높이 평가했다. 5·18의 성격을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닌 국가폭력에 저항한 ‘민중항쟁’으로 규정한 김씨는 5·18의 원인(遠因)을 불철저한 과거청산에서 찾았다. “5·18의 기원은 친일세력의 미청산에 있습니다. 5·18을 바로 친일세력의 전형인 박정희가 합법적인 민주정권을 무너뜨리고 종신집권을 획책하는 과정에서 원인이 발생했으니까요.” 지난 25년간 저술 활동, 특강 등을 통해 ‘5·18 전도사’ 역을 자임해온 김씨는 “청문회나 검찰 수사로는 진실 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며 “5·18의 역사적 평가를 위해 학문적 연구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글 조운찬·사진 권호욱기자 sidol@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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