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 국민대 법대 교수ㆍ변호사 >
국제유가 급등과 더불어 환율 하락,특히 미국 달러와 엔화에 대한 원화의 강세로 국가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이 환율 하락이 달러화 부채가 많은 국가 기업 그리고 해외 체류자나 여행객들에게는 반가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경기의 성장동력이 점점 소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언젠가는 가라앉을 시한부 행복에 불과하다.
원화 강세가 피할 수 없는 대세이고 헤쳐 나가야 할 적광이라면 이렇게 강해진 원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 운용이 수출전략에 주로 맞춰져 있었다면 이젠 수입에도 전략이 필요한 때다.
국민들로 하여금 돈을 잘 쓰게 하는 것은 벌어들이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엔 개인들의 소비 패턴도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이것이 수출 전략과 수입 전략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원화가 강세일 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해외부동산 투자다.
넘치는 달러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으나 과거 일본이 무분별하게 해외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던 경험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소니사는 타임워너와 경쟁 끝에 MGM을 50억달러에 사들였다.
단순한 부동산 투자보다 우리의 상품과 기술이 주로 거래될 해외의 문화를 사들이는 것은 고객들의 정서와 감정을 사는 것과 같다.
한류의 거점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다른 하나는 지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인텔과 삼성전자 사이에 특허권 분쟁이 생겼을 때 인텔의 무리한 요구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삼성전자가 망해가는 미국 회사들로부터 사들인 반도체 관련 특허들 덕분이었다.
매입 당시에는 패키지에 끼여 덤으로 받아 왔던 특허가 인텔을 주저앉히는 결정적 요인이 됐던 것이다.
2005년도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전체 국제특허출원 등록 건수 중 33.6%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만큼이나 미국의 대학이나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와 기술 가격은 할인되고 있는 셈이다.
국가는 기업들의 수요와 장기적인 산업 전략 아래 체계적인 지식 수입시스템을 갖춰놓고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이에 소요되는 비용 등에 대한 조세혜택도 줘야 할 것이다.
지식 수입은 기업의 몫만은 아니다.
2005년 9월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 중에서 가장 장서가 많다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249만3919권의 책을 갖고 있는데,이는 미국 하버드대의 1518만1349권,일본 도쿄대의 811만2335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더욱 한심한 것은 2005년 4월 기준으로 서울대 도서관의 언어별 장서 중 영어는 3804종,7792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상 지식도 기왕 수입해야 한다면 어정쩡하게 일본이 번역한 책을 다시 번역하지 말고 직수입을 해야 한다.
돈값이 있을 때 개인이건,대학 도서관이건 양질의 원서 구입을 대폭 늘려야 한다.
당장 눈에 띄는 것들은 아니지만 이것이야 말로 국가의 자산이자 대한민국이 또 한 차원 높이 도약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환율 하락으로 값이 더 싸진 수입 명품과 해외 관광에만 눈을 돌리는 한 당장 몇 년 후의 미래는 모두에게 암담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답잖은 선거공학적 술수와 포퓰리즘이 아니다.
작더라도 5년,10년,20년을 내다보는 실용적 아젠다를 던져야 한다.
급격한 환율 하락의 비상사태에서 우리 돈을 어떻게 잘 쓰도록 지혜를 모아나갈 것인가도 그 중의 하나다.
달러화 약세의 위기에는 분명히 기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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