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신문기금 지원 '得보다 失' / 손영준 (언론정보학부) 교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딜레마 속에서 존재한다.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한다. 이 두 가지 목표가 양립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버리기 어렵다. 한 쪽을 버릴 경우 다른 한 쪽을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워, 결국에는 언론으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게는 일종의 숙명이다.

언론은 '공론의 장'으로서 공공적 기능을 담당한다. 사회는 이에 대한 대가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언론 자유를 인정한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유지와 발전에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지만, 언론 활동을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이기도 하다.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자 특혜다.

문제는 언론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경제적 보상 체계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언론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고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중대한 책임을 맡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뿐만 아니라 사회에게도 큰 고민이다.

공익적 역할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정부가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정부가 전면적으로 지원해준다. 기자가 공무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권력 집단을 독립적으로 견제ㆍ감시해야할 책무를 맡고 있다. 정부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다.

언론의 상업성은 언론이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중 하나다. 최근 2006년 독일 월드컵 축구경기에 대한 방송사의 과다 편성도 따지고 보면 시청율 확보를 통한 광고수익 확보가 본질적 동인이었다.

비판이 많았지만, 사실상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속내가 거기에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 선정적 자극적 보도가 늘어나는데는 경제적 이윤 동기가 자리잡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읽어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의 상업적 이윤 추구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서도 안되겠지만, 과도하게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바퀴 중 한 쪽이 다른 쪽에 비해 더 크면 수레는 직진하기 어렵다. 어떤 언론사도 공공성과 상업성을 스스로 조화시키지 못한다면 제대로 존재하기 어렵다. 그것은 시장에서의 퇴출 가능성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언론으로서의 신뢰에 상당한 상처를 안게 된다.

공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상업적 가치는 부차적으로 확보될 것이라는 주장은 요즘처럼 치열한 언론 경쟁 환경에서는 확보되기 어렵다. 새 매체가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언론사의 경영적 존립 기반 확보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신문발전위원회가 올해 신문발전기금 지원 언론사로 중앙지와 지방지, 인터넷 매체 등 모두 12개사를 선정했다. 해당 언론사는 경영적 고충을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발전기금 지원은 언론계 내부에서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친여(親與) 언론' 논란이 대표적인 예이다. 돈을 받게 되는 쪽이나 그것을 비판하는 쪽은 나름대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공공성과 상업성의 확보라는 언론의 본질적 딜레마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여론의 다양성 확보라는 공익적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언론의 숙명을 바꾸거나 그것을 도와주는 시도는 언론의 본질에 대한 재해석이자 언론의 존재 양식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 없이 일회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더욱 아니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모두가 합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신문발전위의 기금 지원 조치가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득보다 실이 클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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