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고려 묘지명’전, 베일벗은 왕조 21세기에 닿다 / 박종기 (국사)교수
2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 묘지명’ 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진열된 고려시대 석관(石棺)을 살펴보고 있다. 묘지명은 보통 납작한 돌에
새기나 석관 안팎의 면에 써넣기도 한다. <강윤중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27일까지)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전시다. 묘지명만을 한데 모은 전시는 처음인 데다 다른 시대에 비해 덜 조명을 받아온 고려사회의 문화와 삶을 새롭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려사를 전공하고 있는 박종기 교수가 전시 리뷰를 보내왔다. 편집자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은 많은 이의 관심과 발길을 끌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 200여점 가운데 30여점이 선을 보이면서, ‘베일 속의 왕조’ 고려왕조의 구체적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묘지명은 묘비명과 다르다. 무덤 바깥의 입구에 세워진 비석을 묘비명이라 하고, 무덤 속에 관과 함께 매장되는 것을 묘지명이라 한다. 고려 때는 무덤 속에 넣는 묘지명 제작이 일반적이다. 지상에 세워진 비석은 국왕의 불교 신앙을 자문한 왕사나 국사밖에 없다. 국왕의 허가 없이 지상에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고려 때 묘지명이 성행했을까? 비석을 세우는 일은 가문의 위세와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지상에 비석 세우는 행위를 금지했다. 전시된 묘지명에서 재미 있는 현상이 보인다. 묘지명의 규모와 형식에 신분과 지위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왕족이라 해서 일반 관료의 묘지명보다 반드시 화려하거나 규모가 크지 않다. 지상에 세웠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관과 함께 매장되어 홍수 등으로 묘소가 유실되어도 묘의 주인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의례와 형식보다 실용을 중시했던 고려인의 삶의 지혜가 묘지명에 담겨 있다.

아들과딸 균등하게 재산상속전시된 채인범 묘지명은 최초의 고려 묘지명이다. 중국에서 고려에 귀화하여 관리로서 유학의 전파와 정착에 힘쓴 귀화인이다. 사후 그는 자신의 묘지명을 남기면서 이후 고려에서 묘지명 제작이 유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학이 처음 정착한 수도 개경의 왕족 및 관료와 그 가족, 승려의 묘지명만 전해진다. 지방 호족이나 일반인의 묘지명은 현재 없다. 고려 묘지명의 또 다른 특징은 이같이 중앙 지배층의 장례문화와 연결된다.

왕족과 관료의 부인 등 여성 묘지명이 많은 점이 고려 묘지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번에 다수의 여성 묘지명이 전시되고 있다. 출가한 딸이 홀어머니를 모시거나 재혼한 여인이 전 남편의 자식을 교육시킨 당당한 고려 여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염경애’라는 실명이 기록된 묘지명도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역사에서 유일할 것이다.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 받고, 딸도 호주가 될 수 있던 사회가 고려사회이다. 여성 묘지명이 많았던 것은 그러한 시대상의 반영이다. 조선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다.

유·불·도 다양한 사상 공존우연하게도 고려 숙종의 딸과 아들의 묘지명 2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고려왕조의 특성이 나타나 있다. 따님 복녕 공주를 묘지명에서 ‘천자의 딸’이라 했다. 그러니 숙종이 천자가 된다. 고려는 국왕을 천자라 하고 각종 제도와 의례에서 천자국 체제를 유지한 사실을 이 묘지명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아들 왕효의 묘지명에 따르면, ‘그는 불교를 열심히 믿고, 노자의 가르침을 심히 좋아했으나, 유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불·도의 3교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고려인의 열린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묘지명이다. 누가 조선은 유교, 고려는 불교가 각각 국교라고 구분했는가. 고려의 경우에는 틀린 말이다.

천자국을 자처한 강렬한 문화적 자존의식, 남존여비의 종속의 원리가 아니라 남녀가 동등한 지위를 누린 평행의 원리가 관통한 사회, 유·불·도의 다양한 사상이 공존한 다원사회 고려왕조의 전통은 21세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역사 모델이다. 다양한 묘지명의 형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전시 ‘고려 묘지명’전은 이러한 내용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박종기/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이전글 "간판보다는 실력"... 세계 수재들과 맞짱 / 이해리(컴퓨터학부 4)
다음글 고생하는 민주주의 / 조중빈 (정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