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플라톤, 현재도 살아있는 서양 정신의 기원 / 김영수 일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플라톤(BC 428-347)은 오래 전 사람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주석”이라고 말했다. 플라톤은 전혀 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이 세계의 중심에 살아있다는 말이다.

플라톤의 청년기였던 BC 5세기는 인류정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가 모두 이 시대에 활동했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가난한 광장의 철학자였고, 석가모니나 공자처럼 아무런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이 남긴 35편의 대화편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그러므로 그의 저작은 자신의 철학이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며, 두 육체를 지닌 사람이 하나의 정신으로 융합되어 탄생된 아이와 같다.

플라톤이 평생 추구했던 것은 진리였다. 그러나 진리에의 충동은 정치로부터 나왔다. 그의 외적 삶을 가장 크게 지배했던 역사적 사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조국 아테네의 패배였다. 조국의 위기를 목도하며 정치적 삶에 헌신하고자 했던 20세의 청년은 소크라테스와 조우하면서 철학의 세계로 들어섰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아야 했지만, 그에게는 넓은 어깨 외에 그러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무지’의 자각이 철학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본질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국가politeia’는 무엇이 올바름(dikaiosyn)인가에 대한 대화로 시작하여, 이상국가로서의 정의로운 국가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로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지 철학이나 정치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저서는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 읽힐 수 없는 책이다.

플라톤이 알고자 했던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다른 것이 그렇게 되는 것”, 즉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알게 하는 하나의 모범(paradeigma) 또는 하나의 개념(idea)이었다. 그것이 이데아이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이데아는 불변의, 즉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어야 했다. 또 이데아는 이런 특성 때문에 현상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적인 것은 언제나 변하며, 다른 모든 것의 기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비현상적인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그것은 영혼 속에 감춰진 심안, 즉 이성(logos)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감각세계에 몰입하여 있기 때문에 이성을 깨워야 한다. 그 방법이 산파술이다. 그러므로 산파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억견(doxa)을 제거하고 그 내면에 있는 참다운 지식(episteme)을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답법(dialektik), 즉 대화이다.

그러나 ‘동굴의 우화’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사람들은 오랜 관습과 법률에 집착하여 무엇이 국가에 필요한 것인지 무지하다. 올바름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가진 사람, 즉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할 때 국가는 가장 좋은 국가가 될 수 있지만, 사태는 그 반대이다. 한 국가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관습과 법률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로, 그들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국가의 올바름에 가장 해롭다. 철학과 정치의 불화는 그 산물이며,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 생생한 실례이다. 당대의 아테네에서 플라톤이 발견한 철학의 적은 일반인들의 관습적 사고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형성시킨 시인, 소피스트들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은 동시에 이들과의 정신적인 투쟁이기도 했다.

플라톤의 철학과 정치학은 모든 선구자들처럼 당대의 현실에서 모두 패배했다. 그러나 그의 저작에는 정치와 철학, 그리고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영원한 질문들이 들어 있어, 오늘날에도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와 대화하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김영수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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