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문제는 ‘순혈주의’가 아니다 / 한경구 (국제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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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가 한국의 ‘단일 민족’ 강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보도는 국내의 여러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 원인을 단일 민족에서 찾는 것은 유엔의 몰상식한 판단”이라며 ‘우리 민족 정체성을 흔드는…유엔을 규탄’하는 항의가 터져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단일 민족’에 집착 말라는 유엔 권고를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며 ‘낡은 혈통주의를 버리고 우리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면 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하지만 전후의 사정을 살펴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는 과연 단일 민족 국가인가 하는 점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우려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 정부가 이곳에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민족적(ethnic)으로 동질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소수민족문제에 대해 경험이 없으며 민족적 동질성의 기반을 이루는 ‘순혈’ 원리가 ‘혼혈’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혈연적으로 단일한 국가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한국인이 다양한 기원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단군신화에도 단군이 한민족의 생물학적 조상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조선의 실학자들이 단군과 기자(箕子)를 강조한 것은 조선이 비록 덩치는 작지만 중국만큼 나라의 역사가 오래되고 또 교화도 일찍 이루어졌다는 사실, 즉 우리의 당당한 문화적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혈연적 구성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 집단으로서의 민족은 근대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혈연공동체’로 왜소화되었고 국조(國祖) 단군은 어느덧 혈연 집단의 조상처럼 되어버렸다. 비상 상황에서 민족 단결을 위해 저항민족주의가 형성한 이런 ‘신념’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계속 주장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역사적으로 봐도 고려와 조선은 문화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외국 출신자, 즉 향화인(向化人)을 끌어안은 정책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향화인들은 원래의 신분과 교육 정도 등에 따라 관직에 취임하기도 했고 정착 과정에서는 가옥과 전답, 심지어는 혼인 주선 등 국가의 지원과 배려를 받았으며 3대손까지 군역도 면제를 받았다. 외국인은 일단 손님으로 대접을 했으며, 조선의 통치하에서 조선의 풍습을 따르고 살면 조선 백성이 된다는 것이 정책의 기조였다. 그러니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소수민족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렇게 볼 때 순혈주의가 차별의 주원인이라는 분석은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근대적 신분 질서도 문제였겠지만 여진인이나 왜인보다 송나라나 명나라 출신이 비교적 쉽게 한국 사회에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은 ‘혼혈’보다는 출신국의 문화적 우열 평가에 입각한 차별 때문이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출신과 개발도상국 출신에 대한 대접은 크게 다르다.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 결혼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순혈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출신국에 대한 터무니없는 문화적 우월감 때문이다. 이태원에서 미국 흑인 행세를 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청년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므로 단지 순혈주의나 단일 민족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보다 뿌리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르고 우리보다 소득이 낮다고 터무니없는 우월감을 갖고 함부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8/2007082801284.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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