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리더스포럼]서비스산업의 유목민과 정착민 / 김현수 (경영) 교수

유목민과 정착민의 가장 중요한 차이 두 가지를 꼽으라 하면 기동성과 개방성을 들 수 있다. 유목민의 기동성은 말을 이용한 간편한 기병 체계에서 확인된다. 그들은 전장까지 동물을 끌고 다니면서 보급 문제를 해결했다. 또 전투 군장에서도 확인된다. 중세 유럽 기사단의 갑옷과 전투 무기의 무게는 70㎏이었지만 불필요한 것의 소유를 최대한 줄이는 유목민 군장은 7㎏에 불과했다. 보급에서도 소 한 마리분의 고기를 말린 보르츠(육포)를 소 방광에 넣어 병사 한 명의 1년치 식사를 해결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고기·상추·마늘·김치를 모두 챙기는 정착민의 일반식사와 차이가 크다.

유목민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 획득에 적극적이다. 그들의 인사말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당신이 온 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였다. 외지인을 환대하고 외지인과 교류하고 정보를 많이 수집하는 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정착민은 자기 몫을 지키려고 외지인을 배척하고 새로운 정보에 둔감하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지식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을 보면 정착민적 사고방식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서비스 생산성을 현재 선진국의 40% 수준에서 2012년에 50%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고 목표를 설정하고 있고 구체적 수단 중의 하나로 현재 3.4% 수준인 서비스분야 R&D 지원을 2015년까지 6.8% 수준으로 증액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재정운용 방식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목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유목민처럼 달려가는데, 우리는 정착민처럼 기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개방 경제하에서 생산성이 절반밖에 안 되는 나라가 어떻게 국내 인력 고용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서비스 R&D 지원 계획도 미흡하다. OECD 국가의 평균 서비스 R&D 규모가 23.7%고 우리 민간 투자가 6.9%인 상황에서 정부가 2015년까지 6.8% 수준으로 증액하겠다는 정책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출발이 앞서면서도 뛰어가는 국가와 출발도 늦으면서 기어가는 국가는 점점 차이가 커질 것이다.

또 개방성도 국가 간에 차이가 크다. 미국은 2004년 말에 국가경쟁력위원회 보고서에서 서비스산업 연구와 혁신적 비즈니스 설계 연구 등의 투자 부족을 지적했다. 그 결과로 미국은 서비스사이언스라는 용어를 개발하고 정부 차원에서 서비스 투자와 연구를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 각국과 일본·중국도 바로 이어서 적극적으로 서비스사이언스를 받아들이고 서비스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Harvard Business Review, Communications of the ACM 등이 2005년 초에 서비스사이언스를 수용하면서 연구활성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2006년 6월에 한국IT서비스학회가 서비스사이언스연구회를 만든 게 시초고 서비스사이언스전국포럼이 사단법인으로 발족해 활동하고 있지만 정부와 민간에서 수용하는 속도가 매우 더디다. 새로운 흐름의 신속한 수용과 적극적 흐름 주도 의지가 필요하다. 유목민적 기동성과 개방성을 더 키워야 한다. 그래야 양질의 고용 창출과 지속적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최근 삼성SDS가 글로벌기업인 캡제미나이와 사업공동체 수준의 제휴를 하고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는 것은 진일보된 개방성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관리하면서 선진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또 개방성과 확장성이 특징인 SW2.0 시대를 열기 위해 SOA·SaaS 등 서비스 중심적 소프트웨어 트렌드를 여러 기업이 주도하는 것은 기동성의 진전이다. 민간의 역동성에 정부와 학계가 호응, 시너지를 크게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려면 우리 의식이 먼저 앞서가야 한다. 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 유목민의 초원에는 주인이 없다. 글로벌 시장도 본디 그러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인의식을 강화하자.

원문보기 :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7101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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