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흐름과 소통]정부, 너무 비싼 공연요금 ‘원가 조사’ / 장승헌 (무용) 교수

“3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티켓은 비싸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월 150만원 벌어서 두 명의 티켓을 끊어 버리면 90만원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원가 조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과연 변할까?” 블로그에 어느 네티즌이 적은 글이다. 한 개인의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지만 고가 공연들에 대한 일반의 소외감을 읽을 수 있다. 정신적 향유물인 공연마저도 고가 아파트처럼 계층을 나누며 위화감을 조장하는 기준이 돼가는 분위기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요금 합리화’를 내걸고 공연원가를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연출이나 작곡 등 창작물에 대한 원가 개념의 적용이 합당한 것인가’에서부터 ‘무엇을 위한 조사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분출되고 있다. 뮤직컬 제작사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와 장승헌 국민대 겸임교수(공연예술학부)가 10일 경향신문에서 만나 의견을 나눴다. 문화부와 조사를 맡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측은 준비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이하 설도윤) = 이런 조사 자체가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1995) 이전만 하더라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없이 마구잡이로 해외 작품이 공연됐습니다. 그러나 WTO 가입 후 저작권을 들여와 공연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와 있는 상태입니다. 그만큼 공연 환경은 숨가쁘게 변화해왔는데…. 진작에 순수공연과 상업공연이 구분돼 시장 변화에 대응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정책이 따라주지 못했다는 얘기죠.

장승헌 국민대 겸임교수 및 MCT 예술감독(이하 장승헌) = 과연 제대로 된 공연시장이 형성돼 있는가부터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금은 유통(극장)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죠.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티켓 수입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우리 것을 만들어 제작비를 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한편에서는 장사가 잘 될 만한 수입품을 들여와 공연 가짓수를 늘리고 있어요. 공연이 사행산업화하는 느낌마저도 듭니다. 공연계 전반의 상황이 기형적이에요.

설도윤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연원가 조사는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할 일입니다. 단순히 티켓가격 산정을 위한 조사에 그친다면 반대합니다. 무엇을 위한 조사인지 먼저 목적을 확실히 하고 현장에서 협조를 얻어야 할 문제죠.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비슷한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엄청난 서류를 내밀며 작성토록 했죠. 적어도 2명의 직원이 최소 2~3주는 매달려야 했어요. 그런 방식의 조사에 응할 만큼 여유 인력이 있지도 않거니와 새 비용이 드는 일이었죠.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압니다. 문화부의 조사 역시 결과물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 형성과 사전 준비, 예산 없이는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전시행정용은 곤란합니다.

장승헌 =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티켓가격이 얼마쯤이면 적당하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요즘 클래식, 뮤지컬 공연의 경우 두 명 기준으로 최소 20만~30만원은 쥐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한 명 기준 3만~8만원 정도로 대답하더군요. 물론 경제력이 없는 학생들이지만 실제 소비자(관객)와 시장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죠. 프랑스는 국가지원이 많기 때문에 공연가격이 낮습니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구분, 공공극장의 역할이 확실하기 때문에 다양한 공연물이 존재하고 관객들의 욕구도 충족시킵니다.

설도윤 = 제작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릅니다. 배우뿐 아니라 연출, 안무, 무대, 의상, 조명, 전기기술 등 어림잡아도 300명이 넘어요. 또 협력업체들까지 따지면 방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나마 규모 있는 회사들은 회계처리가 돼있죠. 그러나 이 회계에서 드러나는 숫자는 한정돼 있습니다. 솔직히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듯 위태로운 제작사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장부를 어떻게 들여다보고 어떤 기준으로 조사할지 걱정스럽죠. 티켓 가격이 높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건비, 대관료 상승과 해외작의 경우 지나친 과당경쟁 때문이죠.

장승헌 = 우스갯소리로 ‘주차의 전당’ ‘주차의 문화회관’이란 말이 나돕니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공공극장을 두고 하는 말이죠. 대형백화점이 유통시장을 독차지하고 시장을 왜곡시키듯 공공극장이 제 역할을 못하니까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업출신 CEO가 어느날 갑자기 사장을 맡아 돈벌이에만 급급했죠.

설도윤 = 정부나 시가 공공극장을 활용해 시민들에게 저렴한 공연을 보급하고 나머지 상업공연들은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부당하게 가격을 높인 공연들은 결국 망했어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공연은 만들어지지 않을테고 터무니없는 가격의 공연도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공연이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일어나는 과정일 뿐입니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높이고 낮출 성격이 아니에요.

장승헌 = 전 세계적으로 서울만큼 좋은 공연장이 많은 곳도 없습니다. 피나 바우쉬가 공연하는 뉴욕 극장에 가보면 우리것만 못해요. 그러나 극장은 공연(프로그램)물이 만듭니다. 공공극장도 재정자립도 운운할 게 아니라 정체성을 지녀야 합니다.

설도윤 = 어느 극장은 대관조건으로 수입의 50%를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부담이 어디로 가겠어요. 티켓 가격에 포함됩니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티켓 가격 조사가 아니라 공공극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장승헌 = 공연예술계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판이 구분돼 있지 않습니다. 순수창작을 목표로 해야 하는 예술가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어요. 돈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쓰나미’처럼 상업적인 돈의 가치에 모든 것이 휩쓸려 정신까지 물들이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설도윤 = 정부는 공연원가를 파악한 후 무용·연극 등 순수예술의 지원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또 상업예술은 산업적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상업 공연은 아예 지원하지 말아야 해요. 기획사끼리 경쟁해서 로열티 올리는 경우가 50%를 차지합니다. 뮤지컬이 20만원 한다면 말이 안되죠. 뮤지컬 ‘미스사이공’ 들여오는 데 7년간 공들이다가 안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로열티 높으면 안합니다. 신생 회사들이 문제죠. 영화시장이 침체하니 인력과 자금이 뮤지컬로 뛰어들어왔어요. 문제는 이들 회사가 비용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배우 출연료는 물론이고 스태프 등 인건비가 4년 전보다 3배가 뛰어올랐습니다.

장승헌 = 인력공급도 문제죠. 순수예술 쪽의 인력양성이 순조롭다면 상업예술 쪽에도 건전한 공급이 이뤄질 것입니다. 창작자말고 예술행정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죠. 공공극장에서 기획자나 기관장의 역할이 중요한데 비전문가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자체 공연장이 만들어지면 옮겨다니며 망칩니다. 공공극장은 정체성이 확실한 레퍼토리를 가져야 하고 물적·인적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극장 산하단체가 더 확실히 기능해야 하죠. 기본으로 돌아가 새 문화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설도윤 = 문화부 장관이 바뀌면서 ‘플레이(공연) 쿼터제’가 얘기되고 있어요. 기존 극장들이 얼마나 정체성이 없고 자율적으로 하지 못하면 쿼터제까지 나오겠습니까. 기본적으로 플레이 쿼터제는 반대합니다. 차라리 쿼터제 도입은 펀드에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의 공연펀드가 있다면 800억원은 상업예술, 200억원은 순수예술로 나뉘어 투자돼야 하죠. 상업예술이 부강한 나라들은 순수예술이 강한 나라들입니다.

토론자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장승헌 국민대 공연예술부 겸임교수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32&aid=000194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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