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비핵·개방·3000' 구상의 허점 / 안드레이 랑코프(교양과정부) 교수

北정권이 수용할 가능성 없어실질적 교류확대 방안 필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서울과 평양에 남북 상설기관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연락사무소 설치를 '비핵·개방·3000'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지만 필자의 생각에 이 두 가지 제안은 성격이 다르다.

'비핵·개방·3000'이란 제안은 현 단계에서 장점은 많지만 실용적 접근인지는 모르겠다. 북한 지도부는 '3000' 구상의 기본 조건인 '비핵'을 실현할 경우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많다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개방'도 자신의 체제 유지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긴다. 바꾸어 말하면 평양은 핵을 포기하고 '3000' 구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반도 현황을 주의 깊게 보면, 이북 정권이 핵을 폐기해야만 평양과의 교류와 협력을 확장하겠다는 주장은 교류와 협력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그러나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북과의 교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자신의 특권을 지키려고 주민들에게 왜곡된 세계관을 주입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세계관이 무너지지 않도록 주민들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스탈린 시대의 소련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에 변화를 가져오자고 하는 세력은 북한과의 교류의 확산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이나 외국 생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될수록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체제에 대해서 불만과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혁명이든 진화든 북한의 변화는 이 불만이 있어야 가능하다. 1970년대의 소련에서 자라난 필자는 서구 국가 국민들의 풍요와 자유에 대한 소문이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의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경험을 통해서 잘 안다.

북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기 위한 수단은 다양하다. 대북방송처럼 평양정권이 싫어하는 방법도 많이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북한과의 교류 그 자체다. 북한 기득권층이 체제유지를 위해 돈을 얻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교류는 사실상 북한 사회에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가져옴으로써 북한 독재를 약화시키는 정책이다. 역설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핵폐기까지 아무 교류를 하지 말자는 사람들은 사실상 평양 독재의 생존에 이바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말하면 북핵 위협을 완화하는 방법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뿐이다.

물론 북한 지도부에 아무 조건 없이 돈과 자원을 제공하는 것은 개혁을 할 의지가 없는 기득권층을 밀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성공단 같은 곳에서 남북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과정을 통해 이북 노동자들은 이남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계속 보면서 어용 선전의 허구성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보위부의 감시나 세뇌·사상교육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의 세계관은 보이지 않게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또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와 기사들은 탈 김정일 시대에 경제가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솜씨를 얻을 수 있다.

요즘 북한 당국자들이 도발과 협박으로 남한이 대북 정책을 바꾸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남한 정부는 이런 북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북한과의 협력을 다시 확대할 때가 올 것이다. 이때 타협이 쉽지는 않겠지만, 북한의 변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잊지 않는다면, 이 타협으로 남한은 북한 독재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협력과 공동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긴밀히 발전시키자면 대사관의 구실을 하는 연락사무소가 현실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현 단계에선 북한이 '도발' 쪽을 택한 이상 남북 연락사무소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1~2년 후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1958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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