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기고] 오늘의 사태에 정면승부하라 / 김철(언론정보) 초빙교수

필자는 보수다. 보수는 원래 문제점을 고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혁명적 방법을 선호하지 않을 따름이다. 혁명적 사태가 발생한다면 보수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은 보수로 분류된다. 쇠고기 파동으로 축약된 오늘의 사태는 이 정권의 예정된 실패다. 표면의 문제는 쇠고기이지만, 쇠고기는 표적의 상징일 뿐이다. 연원은 훨씬 깊은 곳에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불만의 표출이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은 한나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비정통적이고도 아마추어적인 정치행태에 대한 국민적 낙담의 결과였다. 사실 한나라당도 잃어버렸다는 10년 동안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준비 부실이란 것을 국민이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알았지만 노 정권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고, 더 중요한 것은 별로 한나라당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이명박의 특성에 혹시나 하고 실낱 같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고, 또 문제인가.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전혀 읽지 못했다. 냉전기간은 보수의 논리가 압도적인 시기였다. 그 때문에 보수의 문제점은 덮어지곤 하였다. 상당히 잘못해도, 상당히 문제가 있어도, 보수의 대안세력을 생각할 수 없었다. 나라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와 그에 따른 분위기는 변했다. 한나라당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병역이 문제가 된 두 아들을 가진 후보를 두 번이나 공천했다. 국가보위를 제일의(第一義)로 삼는다는 보수의 근본적인 자가당착이고 국민에게 중대한 비례를 범했다. 보수에게 진보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보수답게 하라는 국민의 뜻과는 정반대로 간 것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10년”의 전반부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나라당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당연하다. 달라지려고 하지 않았는데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한나라당은 독립적이고 강고한 정책이 부재한 가운데 10년 동안 여당에 끌려 다녔다. 오늘은 사학법, 내일은 주택, 모레는 세금, 글피는 남북관계로 그저 여당이 던지는 정치적 미끼를 뒤쫓다 세월만 보냈다. 독창성도 정치적 집중력도 전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두 김씨는 대단한 정치가였다. 그들은 시대정신을 규정할 줄 알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중적 설득을 위해 단순화할 줄도 알았다. 그리고 집중하였다. 오늘의 여·야 어느 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잃어버린 10년”에 준비한 것이 고작 “강부자, 고소영”이라면 누가 잃은 것을 찾았다고 하겠는가.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몽땅 내쳐야 하는데,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 이미 사태는 악화하기 시작하였다.

실용, 실용 하지만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지도이념이 없다. 그러한 실용은 장사일지언정 정치는 아니다. 오늘의 사태는 보통 사태가 아니다. 국민이 잘 모르는 것도 있겠지만, 정권은 몰라도 한참을 더 모른다. 그것도 자기들 책무의 핵심인 정치를 모른다. 모르면 몸이라도 던져야 할 텐데, 모두 살살 빠지고 있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려면 장관 몇 자리 바꾸는 지엽적인 쇄신책으로는 어림도 없다. 일체의 인적 청산과 함께 쇄신책을 제시하더라도 안 되면, 이 정권은 모든 것을 걸고 국민투표를 각오해야 한다. 그런 방법으로 ‘침묵하는 다수’가 있는지 확인해야 활로가 열릴 것이다. 물론 요즘 지지도로 보아 ‘침묵하는 다수’는 ‘주저하는 다수’일 가능성이 크다. 연기된 실망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렇게까지 안 되길 바란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195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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