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개성 공단·관광 사업을 어떻게 할까 / 안드레이 랑코프(교양과정부) 교수

北체제 바꿀 세력 키우는 일

긴 안목 갖고 판단하는게 좋아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북 관계가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또 하나의 타격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개성관광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 정규군에 의한 남한 양민의 학살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이 참극에 대해서 북한 측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믿기 어려운 주장이나 빤한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가 현 단계에서 확실히 아는 것을 분석해 보면 박씨 피살사건은 의도적인 도발이 아니라 비극적인 실수로 보인다. 물론 현 분위기에서 북한이 도발을 함으로써 남한 정부에 압력을 가할 이유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 측이 도발을 정말 원했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금강산관광만큼 북한 측에 유리한 협력사업이 없다. 국내적으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는 남북 간의 민간 접촉도 별로 없고 북한 당국자들의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적지 않은 돈을 평양 정권의 계좌로 흘러들게 하는 사업은 금강산관광뿐이다. 평양정권의 입장에서 금강산관광은 10년 동안 계속 황금알을 낳고 있는 거위인데 이러한 거위를 죽이려는 주인이 어디에 있을까? 그들이 남한에 뭔가 압력을 가하려 긴장 조성을 꾀했다면 새벽에 혼자 해수욕장에 산책하러 나간 중년 여성 관광객보다 국군이나 어부들을 대상으로 도발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조사와 함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를 철저히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가 장기적으로 냉동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는 발휘할 필요가 있다.

개성관광의 성격은 금강산관광과 다르다. 금강산관광은 남북 교역을 시작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첫걸음이었지만 북한 사회에 대한 영향은 미미하다. 금강산관광 과정에서 북한 국민들은 남한 사람들을 멀리에서 볼 수 있을 뿐이고, 남한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만간 시작할 북한 경제 재건에 필요한 능력과 기술을 배울 기회도 전혀 없다.

개성관광과 개성공단은 그렇지 않다. 물론 북한 독재 정권에는 이 사업으로 번 돈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개성 사업을 냉정하게 보면 이 사업을 통해 북한에 민주화와 사회 발전을 가져올 세력, 그리고 이 세력을 키워내야 할 남한의 입장에서는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성공단과 개성시내관광 때문에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참된 모습을 매일마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개성시내를 누비는 대형 버스 안에 탄 옷차림 좋고 키 큰 남조선 사람들은 결코 미제(美帝)의 희생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한반도 땅에서 보다 더 좋은 사회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또, 개성공단에서 남한 경영자·기술자들과 같이 일하는 2만4000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은 남한의 현실을 더 잘 짐작할 뿐만 아니라 현대 기술과 경제에 대해서 기본 지식을 얻고 있다. 그래서 개성공단이나 개성시내관광은 북한 특권계층이 쓰는 재정을 조달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게 북한 체제를 바꾸는 세력을 키우고 탈(脫)김정일시대의 북한 경제 기반을 준비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북한 엘리트 계층보다 정치 자유화와 경제발전을 꿈꾸는 북한 내 세력에 타격을 줄 것이다.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은 환상 없이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극소수의 특권계층을 보호하고 백성들의 고생을 무시하는 독재 국가이다. 그래도 이 사회가 바뀌도록 하려면 교류와 타협밖에 길이 없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1976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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