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신용위기 사회의 신뢰정치 / 조중빈(정치외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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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 일을 냈다. 우리가 당할 때는 우리의 정책 실패인가 싶더니 미국이 저지르니까 신뢰의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이는 신뢰라기보다 '신용'의 위기다. 정치학도인 필자가 세계 경제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신뢰의 문제를 들고 나오니 한마디 하는 것이다. 불안이 불안을 낳을 수 있어 신뢰의 회복을 외치겠지만 신뢰가 무엇인지,어떻게 하면 신뢰가 생기는지 말하지 않고 믿으라고만 하면 설득력이 없으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어떤 사회가 믿을 수 있는 사회일까. 선진국이 우리에게 보여준 믿을 수 있는 사회의 모델은 '신용'사회였다. 크레디트를 잘 쌓아가는 사회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크레디트 카드 대란을 이미 겪었고,미국은 지금 금융대란을 겪고 있다. 그 여파로 몇 나라는 국가부도를 염려하게 됐다. 선진이든 후진이든 우리가 안전장치 부족 때문에 늘 이렇게 대란을 몸에 붙이고 사는 것일까. 안전장치에 안전장치를 더해도 이런 일은 늘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신용사회의 본질이라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한마디로 신용사회는 믿고 사는 사회가 아니다. 신용사회는 원래 감시하는 사회이고,그 안전장치는 감시장치이다. 철통 같은 신용사회에는 철통 같은 감시장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믿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필자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신뢰'사회가 한국에 있다. 우리는 음식점 주차장에 가면 차에 키를 꽂아 두라는 명령을 잘 받들어 모신다. 신용사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뉴욕의 맨해튼 시내 주차장에서 키를 꽂아 두고 나오는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하겠는가. 주차장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늘 믿는 사회를 실천하고 있고,믿는 사회를 선망하며 살아간다. '감시장치'에 의해 유지되는 신용사회 이전에 우리는 '믿음'을 토대로 한 신뢰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이면 일단 믿고 사는 관계로 만들고 싶어 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있고 사사건건 따져야 하는 신용관계는 불편한 관계라고 기피한다. 그런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한번 믿음이 생기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경고를 받아도 믿는 게 우리네 신뢰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이렇다면 정치가 어떻게 이와 다를 수 있을까. 경제는 어느 정도 신용경제의 면모를 갖췄지만 신용정치는 우리 국민에게 아직 낯선 것 같다. 우리 국민은 여전히 신뢰정치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가를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정치가들에게 '당신 나한테 뭐 해줄 거야'라고 따지며 투표하지 않는다. 그냥 '잘해'라고 말한다. 많은 국민은 노무현 후보도 믿었고 이명박 후보도 믿었다. 흠이 없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신뢰'의 본질이다. 최근 불거진 '공직자 쌀직불금 수령'사태가 심각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신뢰를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키지도 못할 신용에 목매는 세계경제체제야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우리 국민이 오매불망하는 신뢰사회를 우리 정치가가 못 챙길 이유가 어디 있나. 몰라서 못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겐 자칫 깨지기 쉬운 신용정치 이전에 신뢰정치의 토대가 마련돼 있다. 믿지 않는 신용사회의 믿을 수 없는 신용 경제는 믿을 수 있는 신뢰 정치가 치유할 수 있다. 적어도 한국 사람에게는 활짝 열려 있는 길이다. 신뢰 정치의 핵심은 싸움이 아니라 솔선수범이다. 리더십,리더십 말도 많지만 그게 한국 사람이 바라는 리더십이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5&aid=0002011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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