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북한은 시장(市場)을 두려워하고 있다 / 안드레이랑코프 (교양과정부)

단속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장마당 아줌마가

'벤츠 타는 간부들'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김정일 와병설과 김정운 낙점설 그리고 개성공단 육로통행 중단 위협과 미사일 발사준비 등은 국내외에 적지 않은 우려와 관심을 갖게 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남북 신경전도 아니고 북미의 외교적 책략도 아니며 평양 지배계층의 권력 투쟁도 아닌 것 같다. 북한의 미래 모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장마당에서 끊임없이 벌이고 있는 '당 간부' 대 '장사꾼', 바꾸어 말해 '국가통제 강화 세력' 대 '자발적인 시장화 세력' 사이의 투쟁이다.

최근까지 국가의 통제력에 도전하는 시장 세력은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작년 말부터 북한 당국자는 종합시장을 통제하는 쪽으로 개편을 준비 중이었으나 실패로 끝난 것이다. 매일 열리던 종합시장을 2009년부터 10일장으로 바꿔 매월 1일·11일·21일 열흘에 한 번 서게 한다는 지시를 내려 시장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하려고 했으나 올해에도 북한에서 시장 장사가 변함없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이북 당국자들은 개편 조치를 6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사실대로 연기를 의미할 가능성도 있지만 체면 차리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조치를 내려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90년대의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북한 사회 내에서는 자발적인 시장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고, 살아남을 길이 장사뿐이기에 이북 서민들은 가동하지 않는 국가 공장을 떠나서 '장마당'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부의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은 체제유지를 위협하는 장소로 판단되고 있다. 시장으로 나간 사람들은 어용 선전의 허구성을 증거하는 소문을 듣게 되고,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피해서 개인 관계를 조성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또 시장에 맛을 들인 북한 주민들은 지배계층이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는 배급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국 개혁의 성공을 잘 아는 북한의 고위급 위정자들은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그들은 경제 성장보다 체제 유지를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2년에 '7·1조치'로 자발적인 시장화를 거의 합법화했던 북한 정권은 식량 사정이 조금 좋아지자 다시 단속과 탄압의 정책으로 돌아왔다.

2005년에 북한 정권은 배급제를 재개했고, 2006년부터 남성들의 장사 금지, 2007년 50세 미만 여성들의 장사 금지 등 잇따른 조치로 시장의 규모를 축소하려 노력하였다. 이번에 계획했던 종합시장 개편은 시장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 당국자는 이 계획을 뜻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종합시장 개편의 실패는 뜻깊은 사건이다. 20세기에 다른 독재 국가들은 대체로 그 사회의 시장 세력에 굴복하였는데, 북한에서도 보위부나 인민군을 불러올 수 있는 고위급 위정자들은 장마당에서 중국 신발이나 야채를 파는 수많은 아줌마들의 집단적인 힘에 무력하다는 것이 드러나곤 했던 것이다.

'시장 개편'(시장 통제)이 실패한 이유는 사회 동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국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북한 정권이지만, 그 체제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경제를 악화시킨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경제 악화가 민중 소동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김일성 시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소동들이 2000년 이후 여기저기에서 발생하곤 하는데, 이 소동의 이유가 주로 시장 단속 조치에 대한 민중의 불만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 독재정권은 국민들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고, 국내 위기를 초래하는 조치를 최소화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북한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단속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 내에 극소수의 국가 관료들이 독점한 국가의 힘에 도전할 세력은 보이지 않게 성장한다. 조만간 '장마당 아줌마'가 '벤츠 타는 간부들'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2039550

이전글 독일車만 유독 잘나가는 이유 / 유지수(경영) 교수
다음글 [시론] 공금횡령 특단책 내놔야 / 홍성걸(행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