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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오세훈이 벌여놓은 선거판에 시민들이 끌려 나와 곰처럼 재주를 넘었는데 돈은 안철수가 걷어가게 생겼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오세훈 시장은 왜 판을 벌여놓고 유령처럼 사라졌을까? 소위 '보편적 복지'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원칙이라고 생각해서 주민투표에 붙인 것이라면 시민들에게 이번에 또 폐를 끼치게 돼서 미안하지만 한 번 더 투표장에 나와서 원칙을 세워 달라고 호소했어야 상식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첫 임기 때는 모르고 돈을 썼지만 이제 보니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는데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외쳤어야 했다.
안철수 교수도 유령이다. 시장 선거에 나온다며 처음에 한 사나흘 뛰고 투표 전날 나와서 거둬갔으니 오세훈 시장 같기는 마찬가지이다. 반장 선거에 나간다니까 부모님이 성적 떨어진다고 만류해서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할 때는 하고 싶은 게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내 귀에 들리는 안 교수의 말이 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바꿀 것 많다'고 출마의 제 일성을 발했다. 그런데 5% 인지도를 가진 '선배님'에게 양보하고 사라졌다.
그러면 서울시민들은 유령들에게 놀아난 바보들일까?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올해 4 · 27 재보선,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그랬고 멀게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 때,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 때도 그랬는데 서울시민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너는 안돼'였다. 지역감정에 매이고 이념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정치권에 보여준 '너는 안돼'였다. 그리고는 새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 때도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 때도 그랬다.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이 실망하고 이명박 후보를 찍는 일도 같은 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3김 시대,박전노(朴全盧)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새로운 기운은 수도권에서 그리고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졌다. 그리고 매번 이들이 크고 작은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해 왔다.
문제는 정치권이 시민의 이런 염원을 항상 배반하고 언론이 이들을 외계인 취급하는 것이다. 세대 간의 차이를 '빨갱이'의 준동이니, '진보의 승리'니,'넥타이부대'니 하며 자기 식대로 폄하하고,자찬하고,신기해하는 가운데 선거의 과실은 골수 '좌파' '우파'가 나눠 먹으니까 부채는 늘어가고 건전한 시민의 생활은 더 어려워지고만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이니 찍으라면 찍지만 '네가 기다'라고 흔쾌히 찍어 줄 수가 없다. 이래서 선거 결과는 늘 냉탕 온탕이 된다. 말뚝만 박아도 이긴다는 말이 있다. 영남권이나 호남권에 해당되는 말인데 이게 이제 수도권에도 적용된다. '집권파만 아니면 누구라도 된다'가 그것이다. 박원순 후보는 말뚝이었다.
왜 '집권파'라고 하느냐 하면 '파(派)'만 있지 '당(黨)'이 없으니까 그렇다.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으니까 솔직한 측면이 있고 한나라당은 선거 후에 깨닫게 될 테니까 별 차이가 없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결국 오세훈,안철수가 유령 행세를 한 것은 대선 때 출몰하려고 한 것 아닌가. 대선이 문제인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금처럼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남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할 것인가,아니면 스스로를 해체하고 이념과 지역과 싸구려 정책을 떠나 될 만한 사람으로 똘똘 뭉친 '닭'으로 다시 태어나든가 해야 할 것이다. 이도 아니면 해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대통령선거 이야기만 하자니 민망하고 죄송할 뿐이다. 그래도 한마디 더 한다면 오세훈 시장도 한나라당이고 안철수 교수도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이다. 한나라당은 자기가 자기 눈을 찌른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102769611
출처 : 한국경제 기사입력 2011-10-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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