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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교육개혁, 헛발질 16년/배규한(사회학과) 교수

교육개혁을 국가 차원의 주요과제로 추진해온 지 16년이 지났다.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을 공표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대통령자문기구로 '교육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교육개혁위원회는 김대중 정부에서 '새교육공동체위원회',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혁신위원회'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추진목표나 하는 일은 비슷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로 흡수됐다.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교육개혁은 꾸준히 추진돼 왔다. 하지만 그 성과는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20세기 후반 격변의 시기에 세계적으로 '교육개혁'이란 화두가 등장했다. 산업문명의 꽃을 피운 것은 교육이었다. 그런데 정보화와 더불어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에 걸쳐 형성돼 온 공교육 제도의 부적합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사회의 공교육 시스템은 표준화된 지식을 대량 전달하여 산업노동자를 양산해 내는 대중교육제도이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소품종 대량생산과 비슷하다. 그러나 정보사회는 다품종 소량생산과 같이 다양성과 개성에 바탕을 둔 창의적 인재를 요구한다.

'5·31 교육개혁' 조치에서 지향한 것은 바로 다양성·자율성·창의성이었고, 이러한 목표는 정권 차원을 넘어 일관되게 이어져 왔다. 문제는 그동안의 교육개혁이 과연 이러한 목표를 달성했느냐이다. 교육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어 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자율적 학습능력을 지닌 다양한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게 됐는가? 교육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개혁을 16년이나 추진해 왔는데 성과가 없는 것은 시대적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대적 요구는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대중교육제도를 정보사회에 부응하는 새로운 제도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개혁은 평준화, 사교육비, 교실붕괴, 학교격차, 대학입시, 3불정책 등 산업사회 공교육 제도의 현상적인 문제들에만 집착했다.

근원은 못 보고 현상에만 골몰하는 것은 뿌리가 말라 나뭇잎이 시들어 가는데 잎사귀에 물을 뿌리며 나무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아직도 입학사정관제,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교육현장의 각종 문제에 묻혀 정작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제도의 개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 결과로 이제는 교육개혁이란 단어조차 실종돼 버린 것 같다.

교육개혁은 산업사회 시각이 아니라 정보사회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관료적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일률적인 하향식 제도 대신 수평적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다양한 상호작용 양식의 새로운 제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20세기적 시각과 가치관으로 미래 세대를 가르칠 수는 없다.

그리고 교육의 개념을 시대에 맞게 새로 정립해야 한다. 이제는 교육의 주 내용은 지식의 전수가 아니다. 과거와 달리 급변하는 지식을 다 가르칠 수도 없고, 폭증하는 지식을 모두 기억할 필요도 없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내고 종합하여 해석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교육개혁의 주도세력을 바꿔야 한다.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미래사회 변동 추세를 이해하고 교육을 사회 전체의 틀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장기적·거시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한다. 산업인 대신 정보인이 디지털 시대의 교육제도를 설계하고 추진해가도록 해야 할 때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1/04/20111104021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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