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일보-시론]우리 사회 통합의 길은 없는가/조중빈(정치외교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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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지쳐 있다. 노사 현장, 국회의사당, 거리 할 것 없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먹고살 게 없어서 싸운다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지금은 자타가 한국을 일류 국가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불화에 시달리는 사회를 바라보며 누군들 통합을 기원하지 않을까마는 통합을 외칠수록 '남'을 향한 손가락질만 거세지고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나쁜 놈'만 더 확실해지고, 갈등은 고조된다. 필자는 물론 '나쁜 놈'을 골라내야 사회 통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쁜 놈' 골라내기에는 두 종류가 있어서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진보와 보수 간의 '나쁜 놈' 골라내기로는 사회 통합을 절대 이룰 수 없다. 사회주의를 진보라 하고 자유주의를 보수라 하자. 이게 너무 추상적이면 '못 가진 자' 편과 '가진 자' 편으로 나누자. 전자는 '똑같이 만들어 주기'가 원칙이고 후자는 '각자 내버려 두기'가 원칙이다. 이 원칙들 사이에 엄청난 심연이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록이 동색인 것처럼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동색이다. 사회주의나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이기는 마찬가지다. 진보, 또는 사회주의가 공동체주의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똑같이 만들어 주기'의 원칙에 벌써 '나'가 들어가 있다. '나'를 '남'과 똑같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 중심주의에 서게 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상대방은 '나쁜 놈'이 된다. 진보와 보수가 아무리 사회 정의를 앞세워도 싸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나' 중심주의에 입각하고서도 폭력을 피하고 세련되게 갈등을 조절하는 방법을 강구한 결과 서양 사람들은 다수결의 원칙과 법치주의를 고안해 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원칙과 제도를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문제라고 보는 이가 많지만 필자는 한편으로 '복 받은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 하면 이 복을 길이 보전할 수 있을까 궁리해 보고 있다. 솔직히 말해 '다수결의 원칙'이나 '법치주의'는 사회 통합을 위한 일류 수단은 되지 못한다. 두 원칙의 뒤에 숨어 있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힘의 원칙'이고, '힘의 원칙'에 매달리는 한 세련된 싸움이든 그악한 싸움이든 싸움을 항상 달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할 '나쁜 놈' 고르기는 어떤 것일까. 멀리 가서 찾을 것도 없다. 이미 우리 속에 다 있다. '나'를 중심에 놓고 '나쁜 놈'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중심에 놓고 '나쁜 놈'을 골라내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비(是非)를 가린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시비를 가리는 데 세계 일류다. 그래서 '박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종종 '나'를 '우리'로 오해해서 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나'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 해가 되면 '나쁜 놈'이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좋은 놈'이라는 원칙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념, 계층만이 아니라 지역 간의 갈등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위의 원칙에 따르면 경상도·전라도·충청도가 돌아가면서 힘쓰는 것은 '옳지 않은 일(非)'이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이, 충청도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더욱 더 '옳은 일(是)'이 된다. 통합이라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인데 '우리'라는 생각이 없이 어떻게 '통합'을 이루겠는가. 나눠 먹기, 돌려 먹기도 '우리'가 전제돼야 마음이 편할 것이고, '다수결주의' '법치주의'도 '우리'를 위해 '옳은 일'일 때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우리'를 중심에 놓고 철저하게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이 고마울 뿐이고, 우리에게 열려 있는 사회 통합의 길은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조중빈 국민대 정외과 교수 원문 보기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7/27/3428630.html?cloc=olink|article|defau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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