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두 손은 차(車)를 그렸지만, 두 발은 페달을 밟았다/박종서(공업디자인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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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계의 거장' 박종서 교수의 30년 자전거 인생 "자동차는 어려운 블랙박스 자전거는 간편한 유리상자 달릴수록 매력 샘솟아" "자전거는 자기 힘으로 페달을 밟아 고스란히 그 진동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깔끔한 기계입니다. 에너지를 끌어다 써서 조금 달릴 때마다 나무 수백 그루를 죽이는 꼴인 자동차와 비교가 안 되죠." 최근 서울시내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박종서(62)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는 거침없이 말했다.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 부사장까지 지낸 한국 자동차디자인계의 거장으로서 전직(前職)을 무참하게 배신하는 대사인데, 그의 표정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하는 듯했다. 30년 가까이 자전거를 즐긴 그의 집엔 기능과 디자인이 서로 다른 자전거가 6대 있고, 손수 조립해 남에게 선물한 자전거도 여러 대라고 했다. 박 교수는 1976년 홍익대에서 디자인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7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자전거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디자인을 공부하러 영국 왕립미술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1981년이었다. 인연은 프랑스 파리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자전거 가게에서 시작됐다. 완성품 자전거는 취급하지 않고 조립용 부품만 파는 곳이었는데, 자전거 몸통에 해당하는 '프레임'이 가게 벽면 가득히 걸려 있는 모습에 홀딱 반한 것이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 그랬는지…. 온전한 자전거는 한 대도 없고 색색의 프레임만 그득한데, 그게 정말 다양하고 아름다워서 넋을 잃었습니다." 런던으로 돌아가자마자 박 교수는 자전거를 한 대 조립했다. 각종 부품의 성능과 디자인을 직접 살펴보고 고른 '나만의 자전거'였다. 이후 회사든 집이든 수퍼마켓이든 자전거로 가는 생활이 시작됐다. 대만, 일본, 이탈리아…. 세계 어디라도 회사 일로 자주 들르는 곳엔 자전거를 마련해뒀다. 같은 기계라도 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그 느낌이 고스란히 온몸에 전해 와서, 자동차보다 훨씬 서로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한국에 머무를 때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안과 한강변을 노상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양화대교~미사대교 부근 30㎞가량 되는 코스는 수도 없이 달렸다. 1990년대만 해도 자전거 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언제라도 시원스레 내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제주도의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도로를 달려 성산일출봉을 향해 뻗은 가파른 길을 오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차츰 자전거의 외관만이 아닌 기능과 원리의 간명함에 탄복하게 됐다. "자전거는 인간친화적인 '유리상자'예요. 어떤 자전거든 평행사변형 프레임 네 귀퉁이에 핸들·안장·페달·뒷바퀴가 있고, 척 보면 기능과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자세히 봐도 기능과 원리를 이해하기 힘든 '블랙박스'인데 말이죠." 자동차는 멋 부리며 과시하기 위한 포장과 장식이 잔뜩 달라붙는데 자전거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광(狂)인 박 교수에겐 요즘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서울에서 자전거 타기'를 거의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 "우선 한강변에 공사하는 곳이 너무 많아요. 운동하러 갔다가 먼지만 먹고 오게 생겼으니 아예 한강 일주는 그만뒀습니다." 급증하는 자전거 인구를 따라오지 못하는 인프라와 문화도 박 교수를 서울에서 멀어지게 했다. 자전거 인구는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자전거 도로는 여전히 보행자 겸용이 많다. 미어터지는 자전거 도로에서 신경 쓰기 싫어 일반 도로를 달리려고 해도 '자전거가 왜 나오느냐'는 듯 슬그머니 길가로 밀어붙이는 자동차들이 위협적이다. '왕초보 자전거 동호인'이 늘어난 것도 마냥 반기기엔 부담스럽다. "자전거 보급만 주창할 뿐, 기본법률이나 에티켓 정비는 손 놓고 있죠. 자전거를 탈 때도 뒤에 오는 사람을 배려해 똑바로 주행하고 방향전환이나 정지를 하기 전에 손짓으로 신호를 해줘야 하는데, 지그재그로 멋 부리며 타거나 갑자기 움직이는 분들이 많아요." 돌연 앞에 뛰어드는 보행자나 다른 자전거를 제때 피하지 못하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라 "위험해서 서울을 떠났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 서울을 떠난 박 교수가 찾아간 곳은 인천 강화도였다. 탁 트인 경치를 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 게 좋았다. 최근엔 단골 코스를 아주 멀리, 전남 신안군 암태도로 옮겼다. 조립식 자전거를 분해해 가방에 넣고 기차로 목포까지 간 뒤, 목포 앞바다 압해도에서 배를 타고 암태도로 들어간다고 했다. 붉은 돌을 쌓아올려 지은 암태도의 돌담집이 어찌나 독특하고 아름다운지, 항공사 마일리지가 200만 마일을 넘을 만큼 세계 곳곳을 다녀본 그에게도 '절경'이란 것이다. 암태도와 다리로 연결된 자은도·팔금도·안좌도까지 돌아볼 때도 있는데, 아무리 달려도 신호등이 없을 만큼 길이 한갓져 온갖 풍경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것도 매력이라 했다. "자전거를 타면 길 위에 핀 꽃 하나도 자세히 보이는데, 어찌나 다 예쁜지 몰라요. 내 마음 가는 대로 실컷 달리다가 좋은 나무그늘이 나오면 풀 베고 누워 한숨 자기도 하고…. 낙원이 따로 없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전거 전용 트렁크를 KTX에도 싣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선 버스에도 조립식 자전거를 넣은 트렁크를 실을 공간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최고 좋은 기차에도 못 싣게 합니다." 공연히 자전거를 분해했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뒤 다시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홍보한답시고 헬멧도 안 쓰고 양복바지 차림으로 자전거 타는 공무원들이 자주 보이데요. 정책 세우는 분들 인식이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06/2009080600067.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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