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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뉴재팬 릴레이진단] 하토야마 日 차기 총리에 거는 기대/안소영(일본학 연구소) 박사급 연구원

지난 8ㆍ30 일본 중의원 선거는 근래에 드물게 이목을 일본으로 집중시킨 대사건이었다. 반세기 이상을 집권해온 자민당이 대패하고 민주당이 압승한 데 대한 진단과 평가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 관심의 중심에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있다.

일각에서는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의미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기를 주저하는 논조가 없지 않다. 그 자신도 한때 자민당 소속 의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민주당이 구 자민당 세력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연합이라는 점 때문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위한 아시아 외교 강화', 이를 위한 '아시아 국가들과 신뢰관계 구축'이라는 민주당 공약만으로는 그 구체성과 진정성을 가늠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새로운 일본호를 이끌 방향타를 쥐게 될 주역이 바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라는 점 하나로 적극적 평가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첫째, '사죄외교'를 해서라도 과거사 문제를 확실히 청산해야 한다는 소신을 표명한 바 있는 정치인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죄외교'는 '아시아 국가들과 신뢰관계 구축'과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선행되어야 할 기본 전제다. 더욱이 무라야마 담화 이후로도 누차 거듭되어온 '종래 형식적 사죄방식'이 아니라 '총리라는 위치에서 국회를 대표하여 진심어린 사죄를 확실히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진정한 참회야말로 신뢰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둘째, '아시아 국가들과 신뢰관계 구축'을 위한 '사죄외교'가 장차 외교정책의 어젠더로 부상하게 될 때 그것이 일본사회에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라야마 담화문이 발표되기까지 얼마나 거센 반대와 숱한 논란 등 진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담화가 어떻게 풍화되어 갔는지를 본 우리에게 하토야마 차기 총리의 정치적 소신은 소중한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한계보다는 가능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정치에는 사랑(愛)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그러나 정치 세계에서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말을 국회에서도 스스럼없이 쓰고 있는 정치가다. 하토야마 정치철학의 핵심인 '우애'는 EU라는 유럽공동체 사상을 제창한 쿠덴호프 칼레르기 저서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의 영향이 큰 듯하다. 하토야마 대표 외교정책 중 한 축인 아시아 중시정책,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바로 그러한 우애정신의 대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 스스로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에서처럼 아시아에서 공동체 사상을 실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순한 문제가 아님 또한 인식하고 있다.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다시 추구하려는 것은 아닌가, 일본 패권주의 부활이 아닌가라는 주변 국가의 의구심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과거 역사를 확실하게 청산하는 것만이 진정한 문제 해결의 길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지기 위해, 정치적 입장에서, 아시아에서 우애 사회 구축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대한 하토야마 차기 총리 '사죄외교'의 인식론적 기반이다.

과거 이승만 라인 선포 후 일본 어선 나포로 회담이 중단되었을 때 이승만의 프린스턴대학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기독교 '우애정신'에 입각하여 한국 정부에 '관용'을 호소하고자 민간특사 파견을 자처한 가가와 도요히코 요청을 당시 총리였던 하토야마 이치로는 적극 수용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식민지 지배 청산과 사죄를 통해 한ㆍ일 간 협력의 현실적 발판을 마련하려는 하토야마 유키오는 또 다른 의미에서 조부 하토야마를 넘으려 하고 있다.

[안소영 일본학연구소 박사급 연구원]

원문보기 : 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463351&year=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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