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일보]새마을운동 개척자들 목소리 전하고 싶었다/김영미(일본학연구소) 박사급 연구원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 마을’을 건설하고 싶었던 농민들이 먼저 존재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묻힌 그들의 목소리를 발굴해 듣고 싶었어요.” 
 
역사학자 김영미(42·사진)씨의 말이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펴낸 책이 『그들의 새마을운동』(푸른 역사)이다. 10년 가까이 방방곡곡에 다니며 새마을운동의 실제 숨은 일꾼을 발굴하고 그들의 증언을 들으며 펴낸 미시사적 역사 연구서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새마을운동일까? “새마을운동 관련 연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결한 게 대부분이었어요. 이 때문에 이념적 거대 담론의 틀만 적용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새마을운동에 실제 몸담았던 분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기에 연구를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발품 팔아 찾아낸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경기도 이천 나래리의 이재영(73)씨다. 새마을운동의 기수로 박 전 대통령에게 국민포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정작 이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새마을운동을 펼치기 이전부터 이씨를 비롯한 농가의 젊은이들이 조직을 만들고 ‘새 마을’을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씨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만난 숱한 농민의 증언도 그러했다.

“경기도 부천 작동에서 만난 할아버님은 ‘우린 새마을운동 시작 15년 전부터 새마을운동 했다’고 하시더군요. 국가 주도 근대화 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평범한 민초들부터 근대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어요.”

한국현대사 전공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 씨의 연구를 “이념의 틀에만 갇혀 있던 새마을운동 연구를 실제 몸담았던 사람들의 입으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일일이 구술로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도 품도 많이 들었다. 이씨의 경우 직접 몇 시간씩 만난 건 여섯 차례가 넘고 전화 통화는 수십 번을 했다. 계속 이야기를 듣고, 녹취한 것을 직접 문서로 만들어가며 목소리의 톤이며 뉘앙스까지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 대상들과 연애하는 기분까지 들었다”는 게 김씨의 얘기다. 이씨도 그를 손녀처럼 여겨 매해 가을이면 수확한 쌀을 몇 가마니씩 보내준다.

“농촌에 묻혀있는 노인 분들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격동의 근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분들이니만큼 이야기가 풍부하거든요.” 역사학이 문헌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이런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그의 미시사적 역사학 연구론은 개인사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자신이 대학생이던 때 아버지가 불교에 귀의하면서 “너 혼자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기여하는 공부를 하라”고 가르침을 준 것이 예다. 경상도 출신으로 전라도 종갓집 종부로 시집가서는 가족사와 개인사에 대한 관심의 지평을 넓혔다. 현재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한국 근현대사 속의 개개인의 삶에 파고드는 미시 역사 연구를 계속 파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만큼 현대사에 굴곡이 많은 나라도 없잖아요. 또 그 굴곡 속에 묻힌 개개인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지요. 평범한 이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취합해서 소설처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내는 게 꿈입니다.”

원문보기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9/10/3470312.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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