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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시론] 북한 '공갈 전술'의 유효기간/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미 국무부가 북한과 직접회담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어제는 '비핵화'를 전제로 '인센티브' 제공 발언까지 나왔다. 이 선언은 오랫동안 북한과의 외교접근이 6자회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미국 입장의 변화를 의미한다.

일견 이것은 북한의 외교적인 성과로 볼 수 있는 변화이다. 6자회담은 내부적인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합의하에 채택된 회담 형식이었다. 그러나 주변 국가의 갈등과 모순을 너무 잘 이용할 줄 아는 북한 외교관들은 6자회담과 같은 다변적인 테이블을 장애물로 볼 수밖에 없었다. 6자회담의 불참을 선언한 북한은 미국과 양자 대화를 하면서 중미·한미·한중 간 갈등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보다 더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번에도 북한 정권은 이 '성공'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우를 범할 게 틀림없지만, 미국측은 양자 대화에 대한 동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희망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대외 관계 역사를 보면 그 사람들은 매번 같은 전술을 사용하곤 한다. 북한은 현황에 대한 불만을 느끼거나 주변국가에서 보다 더 많은 양보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제일 먼저 미사일 발사, 핵실험, 전쟁 위협과 같은 수단을 이용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위기를 만든다. 긴장으로 팽팽해진 상황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생각되면 북한 정권은 회담을 제안한다. 그 다음에 북한은 도발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주변국가로부터 다양한 양보와 보상을 받는다.

북한 정권은 이 전술을 1993~94년에도, 2006~07년에도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최근에 북한 정권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입장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무관심이라는 이중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 외교관들이 여러 차례 그 효과가 입증된 전술을 다시 사용하자는 결정을 내린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1994년에도, 2007년에도 미국은 이 압력과 공갈에 굴복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영구히 반복될 수는 없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전술은 반복될 때마다 그 효과가 조금씩 낮아졌다. 1990년대 중엽에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은 북한에 충분한 양보를 제공하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6년 핵실험 이후에도 이러한 낙관주의자들이 숫자는 적었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미국에서 주류 의견은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할지라도 비핵화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류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북한의 도발은 오로지 양보를 많이 얻어내려는 책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꼬마나 철부지 10대처럼 행동한다는 클린턴 장관의 발언은 북한 문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제 미국 입장에서 보면 비핵화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북한에 의미 있는 양보를 제공할 실질적인 명분이 생긴다. 다시 말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신경을 쓰는 단 하나의 이유는 핵무기 및 핵확산 위험뿐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할 수 없는 조건하에 규모가 큰 대북 원조가 재정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은 미국 정계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양자 회담을 비롯한 대북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것일까? 쉽게 말하면 미국측은 북핵 문제 해결이 회담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만, 이 문제를 관리할 희망의 통로 하나쯤은 열어 놓자는 전략일 것이다. 미국은 북한 후계자 문제와 김정일 건강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북한에서 갑작스러운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러한 조건하에 미국이 북한 지도부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단이 있으면 그것은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닌 것이다.

물론 미국은 북한에 일정한 양보를 주기도 하고 원조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원조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을 것 같다. 북한이 다시 한번 공갈 전술을 사용하여 후한 원조를 받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16/20090916019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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