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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 삶과 문화]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 /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10월 1일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에선 떠오르는 클래식 스타 세르게이 하차트리얀의 협연이 있었다. 명절 연휴 전날의 음악회라 갈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다가 3년 전 그의 독주회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며 길을 나섰다.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를 했을 당시 카르멘 판타지를 연주하던 20세 청년의 바이올린 소리에서 문득 마리아 칼라스의 카르멘이 연상되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이듬해 한국에서 독주회가 열렸는데, 그는 여느 젊은 연주자들과 달리 기교를 뽐낼 수 있는 곡이 아닌 모차르트, 슈? 프랑크 등 정석의 레퍼토리를 선택, 천상의 소리로 청중을 열광시켰다. 청중의 떠나갈 듯한 환호성에 상기되어 수줍게 웃던 하차트리얀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의 연주를 기다린 것은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술의전당에 도착하니 연휴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거의 매진되기 직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좋은 자리를 구해 가득 찬 청중 사이에서 연주를 보게 되었다.


시벨리우스 협주곡 첫 음을 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고귀한 소리와 긴 호흡의 음악으로 인해 마치 심연(深淵)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연주자가 아직 24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원숙한 음악이었다. 그가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음악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앙코르곡으로 고향인 아르메니아의 느린 곡조를 연주할 때는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한 장면처럼 광활한 대자연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은 자신만의 음악에 탐닉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조차 굉장한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3년 전, 하차트리얀의 영롱한 모차르트를 음미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 제자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를 취재하러 학생기자단 몇 명이 리허설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반주를 맡은 누나와 음악가인 어머니가 그에게 잔소리를 한참 퍼부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는 우상같은 하차트리얀에게 서 있는 위치부터 음악까지 일일이 코치하는 것을 보고 조금 민망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그의 어린 시절의 연주에서 덜 다듬어진 소리와 매끄럽지 못한 흐름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하차트리얀의 놀라운 성장의 밑거름에 다른 평범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가족들의 충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훨씬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번 서울시향과의 러허설에 더 이상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홀로 등장했다는 소식은 더욱 반갑다.

신동으로 알려진 안네-조피 무터는 카라얀의 인정을 받아 신데렐라처럼 음악계에 데뷔했다. 일찍부터 연주무대에 오른 덕에 팬들은 30여년이 넘도록 그녀의 음악적 성장을 쭉 지켜 볼 수 있었고 아직도 그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어릴 때 그녀가 서울시향과 협연했던 건강한 멘델스존협주곡을, 음색의 변화가 끈적하게 느껴지던 랄로협주곡과 카르멘을, 미국에서 보았던 다소 특이한 베토벤 소나타 등을 떠올리며, 그녀의 연주회를 갈 때에는 정해진 스타일을 예상하기보다 현재의 그녀가 어떤 음악적 생각에 빠져 있을까라는 기대에 설렌다.

음악 신동이 안네-조피 무터처럼 대가로 성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신예 연주자가 대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청중의 입장에서는 더 없이 기쁘고 소중한 경험이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시벨리우스 콩쿠르 최연소 우승이라는 타이틀로 세계무대에 알려진 하차트리얀의 다음 연주가 무터의 그것처럼 벌써 기다려지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들의 성장은 '진행형'이며 청중은 이를 지켜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10/h20091009205556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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