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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경제와 세상]국가채무와 개인부채, 유사점과 차이점/조원희(경제학과) 교수

2008년 말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는, 불끄기 위해 동원된 소방차의 물이 떨어지듯 국가재정 여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여러 국가에서 재정위기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는 그리스 정부의 부채 삭감 정책 발표, 독일·프랑스의 지원 의사 등과 맞물려 진정국면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국가부도 공포는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을 거쳐 일본, 영국 등 대규모 경제까지 위협하는 실정이다.

사라지지 않는 정부채무 불안감

한국의 경우 정부채무가 거론될 때마다 당국자는, 우리는 세계적 기준으로도 양호하며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서도 한국의 재정적자는 마이너스 2.7%, 국가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9.4%로 각각 마이너스 6.9%, 80.2%가 예상되는 주요 20개국(G20) 평균보다 양호하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는 일부 근거가 있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오해에 기인한 것이 많다. 특히 국가채무와 개인부채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것도 있다. 국가는 원천적인 지불능력이 없으며 국가부채는 결국은 국민, 더 구체적으로는 납세자가 지불하는 것이다. 하나의 폐쇄경제를 가정한다면 국민이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좀 과장한다면 내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돈 1만원을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왼쪽 호주머니로 옮기면서 왼쪽 호주머니는 오른쪽에 1만원 빚을 졌다고 한다면 좀 심한 비유라고 하겠지만, 국가채무는 실제 그런 면이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200%를 넘었지만 95%는 자국민이 그 최종 채권자이므로 아직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이 점에서는 유사한 입장이다.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영국은 국가부채가 무려 121%에 달했다. 60년에야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그 기간 영국 정부가 부도 위기를 겪은 적은 없다. 대개 통화증발을 통해 부채의 실질가치를 서서히 떨어뜨리거나 새로 빚을 내지 않는 가운데 경제를 성장시켜 상환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국가채무를 해결했다. 10년 동안 재산이 1억원에서 2억원이 되면 과거에 진 빚은 한결 가벼운 것이 되고, 또 그 기간 물가가 두 배 오른다면 빚의 실질가치는 50% 떨어지는 이치다.

그런데 이런 추론은 경제가 점점 더 개방적으로 되고 국채, 공채의 소유자(투자자)가 외국인이 되면 상황이 아주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국가채무의 성격은 빠르게 개인채무와 유사해진다. 통화증발로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자본이 외국으로 급격히 빠져나가거나, 국가부도를 우려해 만기가 도래한 국채를 외국인이 다시 인수할 것을 거부한다면 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 많은 나라가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일부 경제학자는 재정적자를 옹호하는 케인스 경제학을 비난하면서 “케인지언이 제공하는 점심은 공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경제 활력 회복 안돼면 재정위기

국가채무는 일국 경제의 건전성의 반영일 뿐이며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적인 관점에서 지불의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계 각국의 국가부채가 급증한 것은 경제위기 때문이며 애당초 법적 지불의무가 현실화됐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른 시일 내 국가재정의 도움 없이 경제의 활력을 찾는 일이다. 이 점은 국가채무가 개인채무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 나라의 경우에도 타당하다. 경제의 활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재정적자가 쌓이는 가운데 금융시장은 납세자들의 지불능력을 불신하게 되고 그것이 재정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311181606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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