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경제-시론] 방송사 중계권 분란은 '자살골'/이호선(사법학전공) 교수

국내 월드컵독점료 평균치 4배 공동지분의 대행사 검토해볼만


월드컵에 열광하는 심리적 기저 중의 하나는 객관적인 룰이 있고 페어플레이가 보장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페어플레이의 축제와 무관하게,아니 그 반대로 이 월드컵을 우울하게 보내고,아마도 후유증을 한참이나 앓아야 할지 모르는 데가 있다. 월드컵 중계권을 둘러싸고 그라운드의 선수들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는 국내 방송사들이다.

KBS와 MBC는 SBS가 2006년 올림픽 및 월드컵 방송권 협상을 '특별위원회'라는 단일 창구를 통해 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몰래 월드컵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SBS 및 그 대주주까지 형사고소를 해 놓은 상태다. 한마디로 더티플레이를 했다는 말이다. 극적인 타협 없이는 사법적 결말과 무관하게 민 · 형사 소송의 장기전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더티플레이라면 SBS도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지나친 중계권 확보경쟁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방송사들 간에 코리아 풀이 구성된 것이 1997년이었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인 2000년 11월에 MBC가 박찬호 출장경기를 포함한 미국 프로야구 독점중계권을 확보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에 뒤질세라 KBS가 한국 프로야구에 대해 4년간 독점중계권을 갖기로 함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들 간의 신뢰는 여지없이 깨졌다. 이런 상황에서 달랑 문장 세 개로 이뤄진 방송 3사의 스포츠합동방송 합의사항은 처음부터 준수를 기대하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SBS의 '더티 대(對) 더티'의 논리에 정당성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아시아지역 월드컵 중계 재판매권을 사들인 일본의 광고회사 덴쓰를 통해 월드컵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SBS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7250만달러,한화 약 900억원을 지불했다. 이는 2006년 월드컵 국내 중계권료보다 130% 이상 늘어난 액수이다.

반면 FIFA가 이번에 거둬들인 중계권 수입 증가율은 2006년 대회에 비해 30%로,SBS는 평균증가율의 4배가 넘는 돈을 쓴 것이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의하면 올해와 2014년 월드컵 중계권료 부담 수준을 보면 일본이 국민 1인당 2.15달러이고,축구 열기가 광적인 스페인이 2.22달러인데 비해,우리나라는 2.67달러라고 한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의 경우 우리나라가 1.23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SBS는 국제 스포츠 방송중계시장에 한국을 '봉'으로 내놨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 없게 됐다.

2002년 월드컵 중계권의 유럽지역 독점 판매권을 따냈던 독일의 미디어그룹 키르히가 그 해 파산한 이유 중의 하나가 무리한 중계권료 경쟁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방송사가 중계권을 독점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없지만 이를 빌미로 야외 응원에서의 시청료 요구 등은 바로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으로 이어져 제재와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독식한다고 마냥 느긋해할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비생산적이며 국부의 과잉 유출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은 중계권 협상 창구를 법적,제도적으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3사가 동등한 지분으로 출자한 제3의 마케팅 회사를 만들어 스포츠 중계권을 확보하고,이를 통해 방송사들 및 여타 미디어 사업자에게 중계권을 분배 내지 재판매하는 것이 처음부터 분란의 소지를 잠재울 수 있고,중계권료 협상에서의 주도권도 쥘 수 있다. 이미 확보된 중계권 문제는 신설 회사로 양도하면 무난히 해결될 것이다.

골을 넣는 만큼 안 먹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중계권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국익과 소비자의 이익 보호도 중요하다. 방송사들의 중계권 분란이란 자살골 행진이 멈추길 기대한다.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62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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