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박수칠 때 살펴봐야 할 것/이은형(경영학전공) 교수

GE의 전 최고경영자인 잭 웰치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실패를 자인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허니웰 인수건이다. 허니웰을 인수하는 과정은 당초 생각한 것보다 힘겨웠고, 시간이 흐르면서 인수가격이 점점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조건도 불리한 방향으로 결정됐다. 잭 웰치는 결국 허니웰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인수금액과 조건 등이 불리했기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의 시너지효과는 얻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허니웰의 CEO가 강력하게 버티면서 불리한 조건을 내걸 때 그만 포기했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그러면서 CEO들에게 초기의 의사결정을 포기하거나 변경하는 데 대해 너무 저항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기업의 CEO는 자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임직원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미국의 어느 대기업 경영자는 자기 회사에서 내린 의사결정 중 4분의 1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시인했다. 마이클 헤이워드와 도널드 햄브릭의 연구에 따르면 CEO는 그릇된 자기과신 때문에 지나치게 높은 인수합병 가격을 지불한다고 한다. 이들이 파악한 바로는 CEO는 ▲ 경쟁업체를 능가했을 때, ▲ 언론의 찬사를 받았을 때, ▲ CEO와 직원의 연봉차이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 높을 때 자기과신을 하게 되고 터무니없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경쟁업체를 능가한 경험을 가진 CEO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신하게 된다. 자신의 의사결정, 일하는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며 환경이 바뀌고 경쟁업체가 바뀌고 있음에도 같은 방식을 고수하게 된다. 또 언론의 찬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성과가 높을 때 언론은 CEO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이에 따라 연봉이 높아지게 되면서 CEO의 의사결정은 더욱 오만과 독선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우리는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인수합병(M&A)비용을 지나치게 지불한 굴지의 기업이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CEO는 70% 이상이 소유주 경영자, 즉 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경영을 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에 비해 더욱 의사결정 권한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CEO의 의사결정이 기업의 성공여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EO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견제하거나 바로잡아줄 수 있는 장치가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다.

게리 하멜은 CEO의 권한과 통찰력의 불일치가 전략적 실패의 치명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성장곡선에서 뒤진 기업을 분석하면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통찰력을 잃은 최고경영진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즉 최고경영진의 지적 자본이 권한보다 더 빨리 퇴화하면 그 기업은 미래를 놓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금융위기로부터 가장 빠르게 회복되는 나라로 손꼽힌다. 실제로 상장기업의 상반기 실적은 놀라울 정도다. 6월이 지나면 상반기 실적이 발표되겠지만 벌써 시장의 기대가 크다. 당연히 외신과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 체질이 건전하며 기업의 성과는 선진국 기업을 능가한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다.

경쟁자를 능가하고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지금, 한국 기업의 CEO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나의 권한에 비해 통찰력이 더 빨리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기존의 방식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내 실력에 비해 과찬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의사결정은 모든 정보를 감안하고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어떤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고 독선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6221107480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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