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일보] 막대한 총리 '거래비용'/김상회(정치외교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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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손님이 붐비는 식당에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식당 주차 도우미에게 자동차 열쇠를 맡기고 식사를 하게 된다. 일면식도 없는 주차 도우미에게 자동차 열쇠를 맡길 수 있는 '무모한 용기'는 사실상 주차 도우미 개인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식당이나 그 식당이 들어 있는 백화점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대통령ㆍ청와대, 검증의무 소홀 식당 측에서는 자신들이 고용한 주차 도우미의 신원과 운전실력에 대한 나름대로의 검증 절차를 거쳐 믿을 만한 도우미를 고용했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사람인데도 신뢰하는 것이다. 주차 도우미를 고용한 식당의 검증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고객들은 모두 주차 도우미를 직접 검증하려 들 것이다. 고객들이 주차장에서 주차 도우미에게 일일이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고, 신원보증서를 요구하거나 운전 실력까지 확인하려 든다면 식당은 이내 마비될 것이다. 지난 20여일 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8ㆍ8개각 총리 및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마치 이런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총리나 장ㆍ차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의무를 전제로 하지 않는 권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장ㆍ차관을 임명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리는 지명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할 의무가 내재적으로 뒤따른다.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 청와대는 그런 검증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 살아나고, 국민이 그 시스템을 믿고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내놓는 인물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권리에 따르는 이런 의무를 소홀히 하는 순간 신뢰는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 인사청문회에 나섰던 몇몇 인물은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자신들의 '임명권리'에 충실했을 뿐 과연 '검증의무'에도 충실했는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그 의심은 결국 모든 정당과 언론, 그리고 국민까지 나서서 검증에 뛰어들게 만들었고, 청와대 인사실에서 내밀하게 진행되어야 할 사전 검증 작업이 광장에서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모든 국민이 나서서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후보들에게 공항의 알몸 투시기를 통과하도록 하는 듯한 민망한 장면을 연출했다. 모든 정치인과 언론, 국민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훼손한 꼴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의무를 소홀히 한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고유 권한을 모욕한 셈이다. 그에 따라 후보자들도 불행해지고, 대통령도 불행해지고, 국민도 불행했던 20여 일이다. 사회에 '신뢰'가 필요한 이유는 어쩔 수 없이 관계하고 거래해야 하는 수많은 미지의 집단과 개인에 대한 검증절차를 간소화해 거래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상품이나 저울이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검증 절차를 거쳤다는 신뢰가 없다면 모든 시민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직접 포장을 뜯어보고 자신의 저울로 무게를 달아보아야 한다. 그 경우 시비가 끊이지 않아 원활한 거래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인사파동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대통령과 총리 및 장관 후보자 몇 명을 '거래'하는 데 치른 소모적이고 불필요했던 '거래비용'은 제대로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스스로 훼손한 신뢰 어찌하려나 이번 인사파동의 결과를 두고 정당과 정파마다 각각의 손익 계산과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느라 분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파동이 우리사회에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청와대라는 권력 중심부의 시스템 작동원리나 유용성에 대한 신뢰의 훼손일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치유할 것이냐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결말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는데 무엇이 안타깝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그 안타까움이 권리에 따르는 의무의 무거움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길 기대한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08/h2010083021015824360.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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