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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對日외교 3차 방정식 풀기/이원덕(일본학전공) 교수

일본 정부가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그리고 최악의 원전 사고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대다수 사회과 교과서가 ‘독도는 일본 땅’으로 기술하고 심지어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기술도 눈에 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다. 미증유의 대재앙을 맞아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인을 돕기 위한 행렬에 온 국민이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는 황당무계, 아연실색이 아닐 수 없다. 간토(關東) 대지진 때 무고한 희생을 치른 쓰라린 기억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부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서 벌인 대일 지원의 물결은 인류애의 발로이자 높은 국격을 보여준 감동 그 자체였다. 이는 동시에 한일이 과거사 마찰의 악순환을 넘어 진정한 선린관계로 한 계단 도약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자칫하면 배은망덕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이번 일본 교과서 검정사태의 본질과 맥락을 냉철한 자세로 파악하고 맞춤식 대응책 마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번 교과서 검정은 자민당 정권 시절인 2008년 7월 책정된 신(新)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 입각해 이뤄진 것으로 ‘독도를 일본 땅으로 기술하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된 것이기에 교과서 기술의 개악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문부과학성이 주도한 이번 검정 발표는 사실상 새삼스러운 정치적 결정이라기보다는 ‘비결정의 결정’ 혹은 ‘관료집단에 의한 매뉴얼대로의 진행’ 결과로 파악된다.

다만 정치 주도를 모토로 내건 민주당 정권 지도부가 모처럼 형성된 한일 친선우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을 검정의 발표 연기 혹은 내용 완화라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 1980년대 초 일본 정부 스스로가 교과서 검정원칙으로 ‘이웃 나라와의 우호친선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던 이른바 ‘근린제국 조항’이 이번 검정을 통해 무용지물이 됐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물론 재앙으로 빚어진 극도의 위기상황 속에서 영토문제의 양보로 비칠 행동에 일본의 어느 정치 지도자도 선뜻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센카쿠와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강공에 형편없이 무력한 대응밖에 보이지 못한 일본 정부가 기정사실화한 교육정책의 기본선을 한순간에 변경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항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교과서 검정은 영토 주권 및 역사 인식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재난 지원과는 별도 차원에서 단호하고도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일본의 어떤 조치도 한국의 독도 실효 지배라는 현실을 변경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동의 사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이번 교과서 검정 사태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감정적 대응으로 맞서기보다 침착하고 성숙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일본발 대지진과 원전 사고, 그리고 교과서 검정 사태는 복잡다단한 대일 외교의 퍼즐로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대지진 참사에는 인류애의 차원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원전 사고에 대해서는 동아시아 차원의 원자력 안전성 확보 및 에너지대책 마련을 위한 공조와 협력으로 나서는 한편 교과서 검정에는 단호한 독도 주권의 수호 의지를 보임으로써 다면다층으로 대응하는 기본방향에서 대일 외교 3차 방정식 풀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10401/36093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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