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김정은은 북한을 개혁할 수 없다/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북한에서 나오는 소식을 보면 3대 권력승계가 진행되고 있다. '대장동지'로 불리기 시작한 김정은은 늙어가는 아버지 김정일과 같이 외국대표단을 만나기도 하고 현지지도를 하기도 한다. 사실상 김정은 시대가 막이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 시대가 어떻게 되느냐고 궁금해한다. 그들 가운데 낙관주의자들이 없지 않다. 낙관주의자들은 해외에서 교육받은 '대장동지'가 조만간 북한에서 개혁을 시작하리라고 희망한다. 그들은 최근 북한 TV에 오락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여배우 가슴 노출 장면까지 나오는 것을 자유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

김정은 조카인 김한솔의 페이스북 노출도 낙관주의를 격려한다. 김한솔은 악독한 세습독재 국가의 왕자라기보다는 인간답고 매력적인 청년으로 비친다. 그래서 다음 세대 북한 지도자들이 시대착오적인 체제를 유지하지 않고 국민에 대한 단속과 감시를 완화하고, 북한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는 주장이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낙관주의에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주민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이유는 그들의 부도덕성도 아니고 낙후된 세계관도 아니다.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려는 북한 엘리트의 입장에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엘리트들은 중국식 개혁이 초래할 풍요와 발전에 대해서 잘 안다.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대도시도 많이 순방한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은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모습을 봤다. 하지만 그들은 북한의 경우 중국식 개혁이 고도 경제성장보다 체제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유감스럽지만 그들의 분석은 옳다고 생각된다.

개혁과 개방의 불가피한 결과는 주민에 대한 감시의 약화 및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의 확대이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자유화와 개방은 공산당 정권을 위협하지 않았다. 중국 국민은 자신들이 미국이나 일본 국민보다 잘살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그들에게는 선진 외국의 경제적 우월성이 중국공산당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다. 개혁과 개방이 시작될 경우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남·북한의 1인당 소득격차는 1:15 내지 1:40이다. 전 세계에서 1인당 소득격차가 이만큼 큰 이웃나라들은 없다. 동·서독의 경우는 1인당 소득격차가 1:3에 불과했다.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같은 민족인 남한의 빛나는 성공은 북한 체제의 잘못과 북한 세습 엘리트의 무능력을 뚜렷이 증거하는 사실로 보일 것이다. 그 결과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은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시도는 체제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 최고 지배층은 특권과 권력을 상실할 뿐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받을 것이다. 반군 세력에 의해서 피살된 카다피의 운명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래서 북한 정치 엘리트들은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고 핵무기 개발을 중심으로 벼랑 끝 전술을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원로들의 반대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생활을 개선하려고 개혁을 시도할 가능성이 완전히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은 결국 '마음이 착한 세자(世子)'보다는 북한 민중이라고 생각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1/18/2011111802080.html

출처 : 조선일보 기사입력 2011.11.1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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