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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나 나이로나 천생 40대임을 부정할 수 없는 제 동년배들의 공통 관심사는 늘 아이들입니다. 아주 다른 삶을 사는 듯한 사람들도 아이들
교육 문제에는 금방 공감대를 형성하곤 합니다. 아이들을 과도한 경쟁에 몰아넣는 데 대해 회의가 적지 않으면서도, 매일의 일상에서는 경쟁에서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전선에서 내몰린 반전주의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우리가 자녀에게 갖게 해주고 싶은
'성공적인 삶'이,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는 길이, 과연 자녀들의 세대인 20~3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을지에 대해 솔직히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더 막막합니다. 누구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는 점인지도 모릅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980년대 이후 점점 그 변동폭이 커져 1950~80년 평균 변동폭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큰 변동성은 기업이 전략을 수립하는 전형적인 과정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대개 전략수립
과정은 어떤 목표(전형적인 목표는 물론 경쟁우위입니다)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도출해내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전략가들은 이
과정에서 외부환경과 내부역량에 대해 얼마나 치밀한 분석과 예측이 수반되느냐가 전략의 질을 결정 짓는다고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처럼 환경이 급속히 바뀌는 상황에서 분석이 얼마나 정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전략이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그 전략을 폐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시장은 잔인합니다. 권투선수는 10전 9승 1패의 전적을 자랑할 수 있지만 기업의 경우 잘못 세운 전략으로 인한 단 한 번의 큰
패배는 바로 마지막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최근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적응성'입니다. 기업들이 얼마나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넷플릭스(Netflix)는 이런 관점에서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공개적으로 적응성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아마도 적응성을 모토로 삼은 첫 번째 기업 같습니다. 이 회사
직원들에게는 호기심과 열정, 용기, 그리고 정직성이라는 가치가 강조됩니다. 열정과 호기심을 발휘해서 시도하되 실패하는 경우 그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와 정직성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넷플릭스의 경영진은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종업원의 재량권도 확대함으로써 혁신적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유치ㆍ육성하여 장기적 성공의 승산을 높이는 것"이 자신들의 전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회사에는 규정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휴가나 출ㆍ퇴근 시간에 관한 규정도, 심지어 매일 반드시 출근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니 꽤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만 이 회사 임원들은
이걸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넷플릭스가 내부교육용으로 쓰는 '우리의 자유와 의무'라는 사내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규정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훌륭한 사람을 늘림으로써 우리가 점점 더 겪게 될 혼란에 대처하자"라고요. 변화무쌍한 세상은 더
복잡한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원칙에 대한 천착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읽힙니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 숙제를
해놓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노려보다 생각합니다. 대학들은 10년 뒤에도 그저 성적 좋은 친구들만 뽑으려고 할까요? 아니 대학 졸업장이 이 아이의
시대에도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 되는 걸까요? 제가 망설이는 걸 눈치챈 아이의 얼굴은 슬슬 밝아지지만 저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역시
적응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0110554166805
출처 : 아시아경제 기사입력 2011.12.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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