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중국영화를 보는 이유/김도현(경영학전공) 교수

십오륙년 전 일입니다. 나이는 모자라고 건방은 넘치던, 그래서 세상이 만만한 줄 착각하던 경영 컨설턴트 시절이었지요. 교육 때문에 아시아 지역 여러 사무소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상하이 사무소에서 온 친구들과 홍콩 사무소에서 온 친구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이없었습니다.

대륙에서 쓰이는 보통어와 홍콩 광둥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 눈에는 다 똑같은 중국인들이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홍콩 사무소 친구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고 강조하더군요. 그 이후에도 같은 이유로 겉보기로는 '중국인'들이 모여 대화는 영어로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어디서나 중국어(보통어)를 듣게 됩니다. 중국, 대만, 홍콩에서 온 사람들은 물론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국적이라도 중국계이면 서슴없이 중국 본토 표준어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우리와 일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인이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근 몇 번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저 때문에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못 참겠다는 듯 중국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 소외감 내지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제 서양 친구들 가운데도 중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란 눈의 친구들이 '뿌지엔뿌샨(꼭 만나자') 운운하거나 간자를 나름대로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기분이 아주 요상합니다. 영국의 최고 명문 사립학교 이튼스쿨에서 '앞으로 너희는 중국인들 밑에서 일하게 될 테니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교사가 있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저와 저희 아이들도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결심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국의 시대가 오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아이들에게 살아남을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좀 약삭빠른 계산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버블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에도 미국도 유럽도 앞다퉈 중국의 돈주머니를 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판단이 선견지명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저는 3년 넘게 중국어를 배워 이젠 중국인으로 오인될 만큼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선배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역시 실속이 있으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다가 돌아온 그 선배의 대답에 저는 한 방 맞은 기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선배는 자신이 중국어를 배우는 이유가 중국을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 어떤 이익을 보려는 생각이 전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그 선배의 업무는 중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도 합니다.
 
그는 중국은 우리 이웃이고 이웃을 잘 알고 이해하려면 그 언어를 알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 동안 언어란 어떤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영향력 큰 나라의 말을 배워야 한다고 의심없이 믿어왔을까요?

아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게임을 배우고, 아내와 친구가 되기 위해 백화점에 따라가는 것처럼 이웃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이웃과 서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좋은 친구가 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저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언어는 이해를 돕고 그 이해는 관계로 이어진다는, 그래서 상대의 말을 아는 것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지름길임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저는 제 안의 사대주의를 쑥스러워하며 중국 영화 하나를 골라봅니다. 아, 사실 중국 영화는 졸린 경우가 많지만 말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012610561564382

출처 : 아시아경제 기사입력 2012.01.26 11:34

이전글 [아시아경제]도시개발의 새로운 틀 필요하다/이은형(경영학전공) 교수
다음글 [디지털타임스]자연의 제조방식 모방 신기술 발굴/자기조립소재공정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