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최태만(회화전공) 교수의 현대미술 뒤집어 보기 - 벽을 점령하라, 덕수궁 담벼락에서 열린 두 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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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정부 등 공식적인 기관이나 기구에서 주최하는 전시를 일반적으로 관전(官展)이라고 부른다. 그 뿌리는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1664년 설립된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설립에 뒤이어 1667년부터 개최된 살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살롱은 고전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화의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전시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극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이 살롱에서 낙선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낙선전람회에서 악명을 떨친 마네를 따르던 젊은 미술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학적인 화풍을 중시하는 살롱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 개최된 독립미술전은 인상주의보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미술가들이 참가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전시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전은 일제 강점기에 창설한 조선총독부미술전람회의 제도와 방법을 계승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였다. 1949년 처음 열렸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되다 1953년 제2회가 개최된 국전은 당시만 하더라도 미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신력 있고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그러나 국전이 보수화, 관료화하여 새로운 기풍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흡했을 뿐 아니라 운영과 심사를 놓고 미술가단체가 두 개로 나눠지는 등 시비의 대상이 되자 젊은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국전을 거부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한 비판과 거부가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가을 국전이 열리던 덕수궁미술관 담벼락에 작품을 내건 '벽전'과 '60년대전'이다. 4·19가 일어난 직후인 1960년 10월 1~15일 당시 서울미대 재학생인 김정현 김형대 박병욱 박상은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가 '벽동인회'를 결성해 경기여고에서 법원으로 이어지던 정동고개에서 작품 40여 점을 덕수궁 담벼락에 걸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재래의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식과 시설 그리고 예의를 제거하고, 오히려 우리들의 개성과 주장에서 오는 보다 생리적인 욕구에서 가두 전시의 제 악조건을 무릅쓰고 이의 시도를 감행'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서울대와 홍익대를 갓 졸업한 김기동 김대우 김봉태 김응찬 김종학 박재곤 손찬성 송대현 유영렬 윤명로 이주영 최관도 등 젊은 미술학도 12명이 '60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영국대사관 쪽 덕수궁 담벽에 '60년전'이란 이름으로 10월 5~14일 작품을 전시했다. 이들은 스스로 '일체의 기성적 가치를 부정하고 모순된 현재의 모든 질서를 고발하는 행동아'로 규정하며 '시대의 반역'이 되기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1909년 마리네티가 발표했던 미래주의 선언문을 연상케 한다. '현대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우선 가두에서 마련'하고자 한 이 젊은 미술가 중에서 김봉태 손찬성 윤명로는 성북동 언저리의 어느 판잣집을 임대해 주먹밥에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텐트 천위에 페인트로 대작을 제작했다. 이들은 누구든 원한다면 작품을 기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두 전시는 폐쇄적인 전시장을 거부하고 열린 공간에서 관객과 직접 대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 국전의 권위주의와 폐쇄성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폭발한 이 전시가 지닌 의미는 4·19민주혁명이 낳은 창작과 발표의 자유를 향한 예술적 시위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원문보기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20206.22020200916 출처 : 국제신문 기사입력 2012-02-05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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