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일보]“몸싸움이 최후수단인 국회… 票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남덕우(정치 1기) 동문

미국에서 석사·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1960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 대학교육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토대로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실력 있는 경제학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국민대를 거쳐 서강대에 둥지를 튼 그는 5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1965년 ‘가격론’이란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체계적인 미시경제학 이론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69년 10월 어느날.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짓는 기초공사를 감독하고 있던 그 앞에 지프 한 대가 멈춘다.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전갈이었다. 공사판에서 흙이 묻은 구두를 신은 채로 청와대 접견실로 들어갔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그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한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한국경제 현대사(史)의 산증인인 남덕우(89) 전 국무총리가 관직에 발을 들여놓게 된 스토리다. 남 전 총리는 이후 1970년대 말까지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연이어 지내면서 1970년대 고도성장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지난 26일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학협동재단 고문실로 향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질곡의 한국경제 역사를 생생히 지켜본 그의 눈에 ‘2012년 한국경제’는 어떻게 비쳐질까. 거센 정치풍랑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국경제를 그는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그와의 인터뷰는 이런 의문 속에서 시작됐다.

# “한미 FTA 반대론자들 오해 바로잡아야”

남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9년 4월 인터뷰를 했으니 만 3년 만에 다시 뵙는 것이었다. 내년이면 구순의 연세인데도 그는 예나 지금이나 정정했다. 그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건강한 편”이라며 “한국 선진화포럼 이사장,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등 몇몇 사회단체에 관여하고 있다 보니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남 전 총리는 공직에 있을 때 경제개발계획을 진두지휘하며 기업들과 더불어 ‘수출한국의 신화’를 써왔던 데다 공직 퇴임 후에도 최장수(8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며 수출입국 일선을 지켰다. 그랬기에 지난 연말 우리나라가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데 대해 그가 느끼는 감회는 남다를 것 같았다. 그래서 ‘수출’을 인터뷰 첫 질문으로 던져봤다.

“수출이라 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0년대 초의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제원조로 밀가루와 옥수수를 수입해 간신히 국민들이 기아를 면하고 있는 실정이었어요. 이런 빈곤과 대외의존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경제개발이 필요한데 경제개발 자체가 막대한 수입을 필요로 하므로 수입을 위해서는 수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이었어요. 그는 1964년 그해 수출 목표를 1억달러로 책정하고 업계의 분발을 당부했습니다. 마침내 그해 말에 1억2000만달러를 달성하자 박 대통령은 ‘수출은 국력의 총화’라며 수출 실적이 1억달러를 돌파한 11월30일을 ‘수출의 날’로 제정했던 겁니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지금, 무역액 1조달러를 달성하게 됐고,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무역대국, 7위의 수출대국이 되었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야기를 슬쩍 꺼내봤다. 수출시장 확대를 위해 맺은 한미 FTA에 대해 최근 야권에서 “집권하면 폐기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그는 정색을 했다.

그러나 그는 흥분하지 않고 한미 FTA 반대론자들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요 주장은 FTA가 우리나라의 주권 또는 재판권을 침해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법률이나 정책변경으로 이익을 침해당하면, 중립적인 제3의 국제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양자 간 투자협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국제적 상례예요. 이것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라는 것인데 전 세계 2500여개 투자협정의 대부분에 ISD가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도 85개국과 양자 간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았는데 그 중 5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 ISD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ISD는 한미 FTA에만 있는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 투자관련 협정에서는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관행이에요. 또 재판권 침해라고 하는데 이것도 오해예요. 우리나라는 15년 전에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되면서 WTO 협정에 따라 다른 회원국과 무역분쟁이 생기면 우리나라 법정이 아닌 WTO 패널에 제소해 판결을 받아 왔는데, 결과는 12승 4패 8무였습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고 국가 대 국가의 송사는 어느 한쪽 국가의 법원이 아니라 제3의 국제기관의 심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일각에선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에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할 공산이 없다고 반론하는데 이것 역시 오해입니다. 실제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미국기업은 2010년 10월까지 국제 소송제도를 통해 멕시코에 18건을 제소해 이중 10건의 최종판결이 나왔는데 5승 5패였어요.”

그는 “한미 FTA 반대론자들이 문제제기하는 ISD 제도는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며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투자보다 우리의 대미 투자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후진적 정치문화… 국민들이 바로잡아가야”

남 전 총리는 2005년 진념 전 경제부총리, 유장희 당시 이화여대 부총장 등 전직 경제관료, 후학들과 함께 한국선진화포럼을 발족시켰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비틀거리던 대한민국 상황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선진국 도약을 위한 비전과 실천적 전략을 제시하자는 뜻에서 지식인들이 뜻을 같이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화두를 ‘선진국 진입’으로 돌려봤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20세기 후반기 이후 세계사의 조류는 시장경제의 확대, 정보혁명, 민주화, 세계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조류를 타고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한 예에 속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어요. 먼저 후진적 정치문화로 대의(代議)정치의 운영이 난맥 상태에 있습니다. 사회 면에서는 이념의 갈등, 집단적 이기주의 등이 우리를 암울케 하고 있습니다. 경제 면에 있어서는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도약으로 우리 전통적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이런 시기에는 우리가 갈 방향을 명백히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선진화의 방향은 우선 1인당 소득이 3만~4만달러 정도 돼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또 대의 정치가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평화적으로 조절해야 해요. 엄격한 법 집행으로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것도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입니다.”

남 전 총리가 ‘후진적 정치문화’를 언급한 것을 기회 삼아 그로부터 ‘정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좀 해달라”고 권했더니 “무슨, 내가 건방지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실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몇마디를 던졌다.

“뾰족한 방법은 없어요. 선거 등을 통해 국민들이 견제하는 수밖에 없어요. 국회에서 의원들이 정책 가지고 싸우는 것은 좋은데, 물리적인 폭력을 쓰고 인격을 모독하는 언행을 일삼으면 국민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거든요. 결국 국민들이 그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신문에서도 쓰고 TV나 라디오에서도 그렇게 보도해서 차차 개선해가야 해요. 이런 거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한 가지, 국회법을 손질해서 후진적 정치행태를 못하게 아예 못박아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런 움직임도 있었던 모양인데 제대로 실현이 안 되는 모양이에요. 국회 내에서 정정당당히 정책대결을 펼치고, 의견이 엇갈리면 토론을 하고, 토론을 해도 합의가 안 되면 표결을 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표결이 최후 수단이 아니고 몸싸움이 최후 수단이란 말예요. 이러면 안 돼요. 국회법을 위반한 사람은 반드시 제재를 가해야지요. 국민의 여론을 통해 고쳐갈 수밖에 없어요.”

# 기업가 정신과 ‘대기업 때리기’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거셌던 2009년, 남 전 총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국경제 회복을 이끄는 일등공신은 기업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그는 “한국경제가 불과 30∼40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건 한국기업과 근로자들의 의욕과 창발력 때문”이라며 “한국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반기업 정서부터 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3년 전 인터뷰 내용을 되새기다 보니 불현듯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대기업 때리기’를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슬쩍 물어봤더니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먼저 대기업을 때리는 쪽에서는 자유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는 자유와 경쟁을 속성으로 합니다. 그런데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있게 마련이에요. 그러므로 이러한 이원화를 적절히 조절하는 게 민주적 의회정치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패자와 약자,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승자와 강자, 부자의 자존심과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면 발전과 진보가 없어집니다. 부자를 백안시하면 부를 축적해 큰 일을 해 보겠다는 기업가 정신이 죽어버리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어렵게 해요.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을 가 보면 정주영씨나 이병철씨의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선진국 수준의 병원이 세워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물론 대기업 입장에서도 그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온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경영패턴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경영을 보다 더 민주화하고 투명화하고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청산해서 빈자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에 앞장서야 해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화제를 돌려봤다. 선거철만 되면 대기업을 옥죄는 정책공약이 난무하는 배경에는 1%의 대기업을 두들겨야 나머지 99%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표심(票心)을 의식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공짜급식, 공짜교육, 공짜의료 등을 실시하자면 막대한 국가 예산이 소요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문제예요. 실은 공짜는 없고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5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요양보험)과 1개 공적 부조제도(기초생활보장법)의 내실을 다지는 게 급선무예요. 이를 위해서도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정치권은 이미 있는 것을 보완할 생각은 않고 ‘보편적’ 사회보장을 들고 나오는데, 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지도자는 확고한 정책적 신념과 결단력이 있어야”

요즘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위기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1970년대 고도성장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남 전 총리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실체는 무엇일까.

“민주화된 오늘에 있어서는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 야당·시민단체·이익단체들이 반기를 들고, 국회에서는 언제나 여야가 충돌하니 정책을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울 거예요. 그렇지만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확고한 정책적 신념과 결단력 그리고 추진력이 있다면 국민에게 정책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반대자를 끌어안는 정치력을 발휘해 정책을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자면 정책 담당자인 장관을 빈번히 교체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한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에게 인생선배로서 한마디 해달라고 권했더니 그는 “일단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정했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모든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념과 사회체제에 대한 고민이 있거든 이렇게 생각해 보라”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빵(물질)과 자유예요. 빵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자유가 없으면 사는 보람이 없습니다. 빵과 자유를 양립시킬 수 있는 경제체제는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물론 시장경제에도 여러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민주주의가 부단히 시장경제의 맹점을 보완해 왔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겁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후배 관료들에게 한마디 해줄 것을 청했다.

“개발 연대의 공무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경제개발이 국가목표라는 걸 모르는 공무원은 없었어요. 지금의 공무원들에게 국가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여러 대답이 나올 겁니다. 하나의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선택과 집중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따라서 최고 지도자가 특히 강조하는 목표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돼요. 막중한 책임과 긍지를 갖고 열성적으로 일했던 선배 공무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만큼 발전해온 겁니다. 지금의 중견 공무원들은 개발 연대의 공무원에 비해 아는 것도 많고 매우 민첩한데, 나라를 위해 이것은 꼭 하고야 말겠다는 패기와 열정은 모자라는 것 같아요.”

한평생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살아오신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전해주는 마지막 말이 큰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3300103292405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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