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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충무로에서]늘 성장의 기회는 있다/김도현(경영학전공) 교수

매일 조마조마합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을, 그것도 현물도 선물도 아니고 비교적 보수적인 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해 놓고도 최근 주가지수의 널뛰기를 지켜보노라면 진땀이 납니다. 단기적으로는 그리스의 총선 재실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더 길게는 유로존이 재정 통합을 향한 일정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때까지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교과서에는 거시환경의 변화가 기업 간 경쟁의 동태적 변화에 비하면 더 천천히 일어난다고 쓰여 있지만 최근 3∼4년간의 우리 경험에 의하면 이런 서술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태'들이 기업에 별 영향이 없을 리 없지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전 세계 시장가치의 약 70%를 차지하는 주요 기업 1500여개를 분석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해 온 기업의 특징을 담은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 부진과 시장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만끽하고 있는 기업을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젊은 혁신적 기업이 첫 번째 유형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창업했고 존재하지 않던 사업 영역을 만들어낸 기업은 그 영역이 정점에 달할 때까지 빠른 성장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정무역을 이용한 유기농 커피로 이제 스타벅스에 대적하고 있는 그린마운틴 같은 기업이 바로 이런 유형입니다.

두 번째 유형의 성장기업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위치한 기업입니다. 인도석탄공사나 중국의 식당 재벌 초강남(South Beauty) 같은 기업의 성장 속도는 연간 20~50%까지 이른다고 하니 말 그대로 눈부십니다.

저는 세 번째 유형으로 분류된 기업이 사실 가장 흥미롭습니다. 이들 기업은 최근 창업된 혁신기업도 아니고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에 위치한 것도 아닌, 그래서 성장의 '뒷바람'을 받지 못했음에도 성장해 온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BCG의 보고서는 이런 기업으로 영국 기업 아그레코의 사례를 들려줍니다. 이 기업은 원래 영국의 소규모 기업과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발전기 렌털 사업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둔화되면서 사업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단기간 전기수요가 증가(태풍이나 홍수, 월드컵, 올림픽 혹은 전쟁)할 때 전기를 공급해 줄 수 있는 휴대용 발전기 임대업자로 변신해 성장을 이뤄냈다고 합니다.

최근 최고의 복지정책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정치권에서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늘리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기업이 꾸준히 태어나고 잘 성장하는 것이지만 기업에 지속적인 성장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과제입니다. 역사는 성장에 실패한 수많은 기업의 묘비로 가득하니까요.

BCG의 보고서를 읽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는 짧지만 빠르게 성장해 온 기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게임 기업들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이들 기업의 창립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을 전후로 비슷하고, 2000년대 이후 창립된 기업 가운데서는 사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창업 환경의 개선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이 과연 끊임없이 자신의 사업을 재정의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해 봅니다. 현재 가장 뛰어난 경영학자라고 불리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 주요 기업에 남은 혁신의 기회는 이제 2~3년 안에 사라지게 될 거라고 한 경고와 함께 말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05241116315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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