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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R]‘매너 꽝’ 전투적인 CEO가 성공한다 / 이창민 경영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우수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당신이 성공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응답자의 93%가 능력이나 기회, 인맥, 재물 등이 아닌 ‘매너’를 제1의 요인으로 꼽았다. CEO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영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타인을 배려하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성숙한 인격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국내 한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서는 리더가 갖춰야 할 주요 덕목으로 배려와 정직, 절제, 겸손, 용기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조직 안팎에서 민주적이며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CEO를 요구하는 이른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시대가 열린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이런 트렌드와 정반대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재무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 ‘금융저널(Journal of Finance)’에 게재될 예정인 논문에 따르면 어떤 기업에서나, 어느 상황에서나 강하고 전투적이며 독단적인 CEO가 성공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티븐 캐플런 미국 시카고대 교수 등은 성공하는 CEO가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경영진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ghSMART’라는 회사에서 300명가량의 CEO에 대한 평가 자료를 구했다. 이 자료는 차입매수(LBO)를 통해 회사를 사들이거나 벤처캐피털을 설립한 사모투자자들이 CEO로 고용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 자료의 장점은 평가 항목이 매우 자세하다는 점이다. CEO 자질에 대해 제기될 만한 웬만한 질문은 모두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조직과 계획을 효과적으로 잘 짜는지, 얼마나 추진력이 있는지 등 리더로서의 역량,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지, 다른 사람과 협동을 잘하는지,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지 등 타인과의 융화력, 관련 분야에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새로운 지식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높은지 등의 지적인 능력 들을 평가한 자료였다.

캐플런 교수 연구팀은 분석 대상이 된 CEO들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었다. 이 지표에는 사모투자자들이 사후적으로 내린 평가와 같은 주관적인 내용과 기업의 시장가치, 언론의 평가 등과 같은 객관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이어 캐플런 교수 연구팀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은 CEO들의 자질 평가 내용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CEO에게는 매우 다양한 능력이 요구됐다. ‘ghSMART’에서 평가한 항목 중 추진력, 기획력 등 상당히 많은 내용이 CEO의 성공 여부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한마디로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있는 CEO가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는 최근 CEO 연봉이 급등하는 현상과 관계가 깊다. 대부분 기업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지닌 CEO를 원한다. 하지만 이런 CEO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고액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

더 놀랄 만한 결과는 두 번째다. 캐플런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LBO 기업의 경우 공격적이고 추진력 있는 CEO가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벤처캐피털 기업은 상호 관계를 중요시하는 CEO가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이 두 가지 결과를 종합하면 부드럽고 온화하며 남의 말을 잘 듣는 CEO보다 강하고 전투적이며 독단적인 CEO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조직원들과 잘 소통하고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타인과의 조화에 강점을 지닌 리더가 성공한다는 기존 통념과 정확히 반대되는 연구 결과다. 이는 스티브 잡스처럼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CEO가 성공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잘 설명한다. CEO의 부드러움이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현대 경영자들에게 많은 시사점과 화두를 제공한다.

원문보기 :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20620/47172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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