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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0세 정년 연장, 의무화해야 하나 / 류재우 경제학과 교수

 

새누리당이 내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내기로 했다. 민주통합당은 진작 그런 공약을 내놓았으니, 법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청년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55세 정년이라도 제대로 지키게 해야


정년제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기업에 도입돼 있다. 나이라는 잣대로 퇴직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연령차별의 소지가 있음에도 왜 이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는가? 경제학의 ‘장기 인센티브 계약’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젊은 근로자에게는 생산성 이하의 임금을 주고 ‘강제저축’을 시켰다가 나중에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준다. 중간에 해고돼 ‘인출하지 못한 저축액’만큼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근로자가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이 임금체계에선 평생 받은 임금이 생산총액과 같아지는 시점에서의 강제퇴직제, 즉 정년제가 필수다. 결국 정년제는 생산성을 높여 노사 모두를 이롭게 한다. 또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커지고, 예측 가능하면서 질서 있는 은퇴도 가능해진다.

문제는 정년이 부장급의 경우에도 57세일 정도로 매우 이르다는 점이다. 이는 중·고령자의 소득 불안정성, 자영업 과다 진출, 숙련된 인적자원의 사장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가시화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치권이 중·고령자 고용을 활성화하겠다며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강제규정을 통해 고용을 늘리겠다는 이 법안은 노동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고용은 늘리지 못한 채 경제에 부담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 법은 현실과 괴리돼 있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40대 전반 연령대의 근로자 수를 100명이라고 할 때, 50대 전반 및 후반 근로자는 각각 10명과 3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조기퇴직을 하는 바람에 정년을 맞는 근로자가 10%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는 명예퇴직 등의 조기 퇴직이 가능한 상황에서 정년연장 법안의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고 현재도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고 있는 공공부문과 노조 근로자들의 혜택만 증대시킬 것이다. 더불어 어차피 퇴직시킬 고령자의 명예퇴직금만 늘어날 것이다.

정년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고임금의 고령자 고용이 갑자기 늘어나도 문제다. 기업의 비용이 급증해 경쟁력 약화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정치권은 임금피크제와 함께 추진해 임금부담을 덜겠다지만, 피라미드형의 직급구조와 장유유서의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그 제도의 현실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고령자가 청년층을 대체하면 지금도 심각한 청년 고용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고령자 고용이 늘어난다면 정원제(TO)하에서 이는 즉각적으로 청년 고용을 감소시킬 것이다. 그러면 정치권은 또 청년층 고용할당제를 도입해 청년층 고용을 늘리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령자와 청년 고용 모두를 강제로 늘리겠다는 규제는 노동시장을 질식시키고 결국에는 고용 상황을 더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정년은 점차적으로 늘리되 아주 장기적으로는 철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기업의 연공서열형 임금구조의 변화라든가 나이에 따른 임금 상승속도의 감소가 선행돼야 한다. 또 기업이 임금 및 승진 구조를 변화시키는 등 적응할 시간을 주면서 단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정년연장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게끔 변화시키는 정책이다. 그런 후 재고용이나 임금피크제를 적용해서 정년을 연장하는 부분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원문보기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8/11/8644624.html?cloc=olink|article|default

                                                                                              출처 : 중앙일보 기사보도 2012.08.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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