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 빼곡한 공장지대… 희망·문화를 세우다 / 장윤규 건축학전공 교수

1970년대 서울 노량진 산동네에 소년 하나가 살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아이는 서울 강남의 중학교에 진학해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과외를 주체 못하는 친구들 속에서 돈이 없어 참고서 한 권 못 샀던 아이는 결국 공고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명석함을 알아차린 교사들은 아이가 기술 대신 공부에 매진하도록 배려했다. 그는 공고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서울대 건축학과에 들어갔고, 유명 건축가가 되었다. 가난을 경험했던 그의 마음엔 늘 "빈한(貧寒)한 이들이 차별 없이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건물을 만들겠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대치동 복합문화공간 '크링',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 등을 설계한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줄곧 고민해오던 장 교수가 최근 꿈을 담은 건물을 설계했다. 완공을 앞둔 '성수문화복지센터'다. 낡고 허름한 공장이 밀집한 서울 성수동 공장지대에 들어선 7층 건물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지은 건물로 공연장, 어린이집, 도서관, 보건소 등 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이 들어간다.

"한국의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를 꿈꿨다. 이 건축물이 주변 공장지대에 사는 저소득층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도시 재생을 이끄는 가속장치가 됐으면 한다." 최근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서 만난 장 교수가 말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시(市)에 들어선 미술관. 건축가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우주선처럼 만든 건물이다. 미술관이 위치한 지역은 원래 범죄율이 높은 슬럼가였지만 이 건물이 명물이 되면서 문화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파격적 형태의 건축 스타일을 보여온 그답게 이번 건물 역시 한눈에 튄다. 핵심은 '계단'이다. 건물 1층에서 5층까지 복잡하게 얽힌 계단 구조가 밖으로 노출돼 있어 마치 뼈대가 겉으로 드러난 것 같다. 구조 브레이싱(사선형태의 구조 프레임)을 계단으로 활용했다. 외부로 열린 계단이 건물을 감싸며 타고 오른다.

건축가는 "관공서의 꼭꼭 닫힌 폐쇄적 이미지를 없애고 주변과 함께 호흡하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열린 계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계단은 '길의 연장'이자, '오픈된 광장'으로 기능 한다. 주민들은 길에서 연장된 1층 계단을 타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광경이 건물의 풍경을 이룬다. 계단의 난간 군데군데엔 하얀 철망을 달았다. 건물이 완공되면 이 철망을 따라 넝쿨식물이 자라 건물 입면의 일부가 초록으로 변한다. 내·외부를 넘나드는 계단으로 인해 내부 공간은 기하학적으로 형성됐다. 내벽은 하얀 타공 철판(구멍이 뚫려 있는 철판)으로 마감해 밝은 느낌을 줬다.


주변의 허름한 건물과 부조화라는 일부 지적에 건축가는 항변했다. "낙후된 지역이라고 해서 건물 디자인도 거기에 맞춰서 후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시선을 끄는 건물로 인해 이 동네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복잡한 강남이라면 이런 건물을 안 지었을 거다."

최근 시청·구청 등 호화 공공건물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완공된 공공건물이다. 장 교수는 "호화 청사는 공무원들이 쓰는 '거번먼트(government·정부주도의 행정)'를 위한 공간이고, 이 복지센터는 주민들이 쓰는 건물이기 때문에 '거버넌스(governance·정부와 민간이 함께하는 행정)'를 수행하는 곳"이라며 "공공건물이라도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고 했다. "서울시청처럼 공무원이 쓰는 건물을 휘황찬란하게 만들 게 아니라, 그 예산으로 슬럼화한 지역에 이런 문화 시설 여러 개를 넣는 게 도시 재생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산동네 집에서 내려다보던 동네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들은 생업 전선으로 내몰렸고, 아이들은 골목에 방치돼 있었다. 내 꿈은 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쾌적한 도서관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내가 설계한 복지센터가 마을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공장이 됐으면 좋겠다." 공장지대를 '꿈의 공장'으로 바꾸겠다는 건축가의 바람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16/2012081602772.html

출처: 조선일보 기사보도 2012.08.1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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