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일보]차기 대통령의 조건/정성진 전 국민대 총장(7대)

정성진 / 前 법무부 장관, 국민대 명예교수

대학과 공직에 있으면서 이른바 문민정부, 곧 김영삼 정부 이후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편이다.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그 뛰어난 민주화 업적에도 불구하고 행정 지시사항의 점검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행정 분야에서의 정치(精緻)함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적 신념 탓이겠지만 민심의 추이나 국정 수행의 현실 여건에 대한 두루 살핌의 균형이 미흡해 시종 고전했다고 생각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미외교를 포함한 한국의 국제적 지위 선양에는 얼마큼 기여했지만 인사정책의 실패와 더불어 국정 전반에 대한 편협한 조감(鳥瞰) 능력과 안보와 국방 문제에 대한 한정된 식견 등이 많은 국민을 실망시킨 쪽에 가깝다고 본다. 행정안전부가 언젠가 정부의 주요 시책에 대한 국민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평균 53.7점으로 나타난 바 있다고 하니, 정책 집행이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흡인력이랄까, 정서적 동질감의 확산에도 그리 성공하지 못한 편이다.

우리 국민은 정치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감도 크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선택의 시점을 앞에 두고 국민에게 이런 저런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어떤 심성과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냉철히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를 이끌어가겠다고 나선 정치지도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키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미래 지향적 철학과 원칙이 뚜렷한 사람이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시대에 특유한 지적· 사회적 상식에도 투철해 평균적 국민과 정신적 이격(離隔)이 크지 않는 가운데, 국민을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믿는다.

인기영합적인 달콤한 말로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 국민은 그들의 단순하고 타성적인 정치적 욕망과, 진정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봉공(奉公)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그동안의 학습과 느낌을 통해 이미 슬기롭게 구별해낸다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정치지도자는 국정 각 분야에 대한 고른 안목과 청렴성을 지니고 행정의 우선 순위를 잘 알며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엄정함을 스스로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 집행의 선봉인 공직자들부터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과거의 어느 시기처럼 서면(書面) 보고를 이유없이 피하거나 사적 채널이 공적인 행정체계를 넘어서 버리거나 적기에 해야 할 결정을 터무니없이 늦추는 일 따위도 더 이상 있어선 안된다. 가족 문제가 국정의 걸림돌이 되는 것과 같은 원시적인 일도 국민은 물론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국민은 바른 역사의식과 행정 분야에서의 실용성을 아울러 갖춘 정치지도자를 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은 이제 낮은 곳의 사람들을 보듬는, 이를테면 체온이 느껴지는 정치지도자, 살맛이 나고 많은 이들과 느낌을 같이하는 세상 만들기에 진력하는 정치지도자를 원하고 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정(情)과 한(恨)이 많고 실정법의 규제보다 사람의 도리를 더 중요시하는 정신적 풍토 속에서 태어나고 또 교육받아 왔다. 이러한 국민 심성에 맞게 몸을 낮추는 것은 단순히 정치심리학적으로보다 문화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쩐지 그 사람이 좋더라’ 하는 느낌을 누군들 쉽게 무시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또는 경제의 민주화(헌법 제119조 2항) 등으로 표현된 대한민국 헌법정신에도 들어맞는 일이다.

국민적 결단의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정치가 사회 갈등의 진원(震源)이 되거나, 정치지도자들이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과연 어떤 진정한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할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 눈은 정치판을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81601033037191002

출처 : 문화일보 2012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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