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 "日 과소평가 해선 안돼… 인류 보편적 이슈 내세워 서구와 연합해야" / 한상일(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동아시아에 다시 국가주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등 100여년 전 침략의 역사로 시곗바늘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G2'가 된 중국은 항공모함 도입 등 군사력을 키우며 대국(大國)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행보로 분주하다. 19세기 말 조선은 강국의 다툼 속에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다. 당시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써 그것이 조선의 살길이라고 훈수한 이는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었다. 그로부터 100여년 후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로 급성장한 한국은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책략(韓國策略)을 모색해야 할 때다. 격랑(激浪)의 파고(波高)를 헤쳐나갈 '신(新)한국책략'을 전문가들로부터 듣는다.

"현재 한일 관계는 1982년 일본 교과서 파동 이후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다. 당시는 교과서 검정 때 이웃 나라를 배려하겠다는 미야자와(宮澤) 관방장관 담화가 나오면서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경기 침체와 취약한 정치 리더십, 일본 사회의 극우화로 해결책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다르다."

한상일(71) 국민대 명예교수는 40년 넘게 일본 정치를 지켜본 연구자다. 한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를 둘러싼 일본의 반발에 대해 "양쪽 모두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냉각기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갈 것으로 보나.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단독 제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영토 문제에 관한 한, 타협을 이끌어내긴 어렵다. 우리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국제법적 근거를 계속 축적하고, 세계에 알리면 된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 가운데,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다. 2007년 미국과 캐나다, 네덜란드, 유럽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나왔다. 일본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한 노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의 주장은 국제적으로 호응을 얻기 어렵다. 일본 내 양심 세력과 결합하고 인권 옹호를 공통분모 삼아 미국과 유럽 등 서구와 연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한국과 일본이 계속 충돌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일 두 나라는 완전히 등지고 살 수 있는 사이는 아니다. 양쪽 다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다. 이번 사태를 핑계 삼아 일본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무장(武裝)을 공식화하는 쪽으로 국가의 진로를 바꾸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 '고노(河野) 담화'를 부정하는 일본 정치 지도자의 행동이 동아시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역사 화해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 화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유태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1985년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나치의 침략 전쟁에 대해 사죄한 것들이 EU 국가 간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얘기하려면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정신을 이어받아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연일 고노 담화를 뒤집으려는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는.

"1993년 자민당이 장기 집권해온 '55년 체제'가 붕괴하면서 고이즈미 내각 5년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총리가 바뀌었다. 내각 수명이 평균 1년이 안 될 만큼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다.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이 된 경기 침체와 작년 쓰나미 사태가 겹치면서 일본 사회에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국내적 상황이 과거사의 책임을 부정하고, 극우적 발언이 쏟아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이런 일본을 상대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그래 왔듯 한일 관계는 두 가지 트랙을 함께 써야 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과거사 책임을 부정하는 세력을 비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고노 담화의 정신에 공감하는 양심적 정치인과 지식인·사회단체와 계속 소통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 일본에는 일본군위안부와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는 한국의 주장을 성가시게 생각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일본 신문에서도 그간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걸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글들이 나온다.

"일본의 침략과 한국 병탄으로 빚어진 징용, 징병,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한일 국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상론(理想論)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에서 이런 결의안을 만드는 게 총리나 각료 차원의 사과보다 더 구속력이 있고, 두 나라 국민의 공감대가 클 것이다."

―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妄言)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후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강대국으로 떠올랐다가 침략 전쟁으로 패전국이 됐으나, 다시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국에선 중국의 부상(浮上)에 압도된 탓인지, 일본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경험과 미래 발전 전략을 적극적으로 연구할 때다. 일본이 경제 대국이 된 90년대 이후 국가 목표를 상실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미래 전략을 설정하는 데도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만하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31/2012083100217.html

출처 : 조선일보 기사보도  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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