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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권과 한·일관계’ 국민대 이원덕 교수에게 듣는다
일본 정권이 뒤집어졌다. 자민당이 3년3개월 만에 정권을 탈환한 것이다. 16일 치러진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480석 중 294석(이전 118석)을 차지해 과반을 넘겼고 민주당은 57석(이전 230석)으로 주저앉았다. 집권 민주당의 참패와 혁신 세력의 몰락, 제1야당 자민당의 완승 그리고 보수 세력의 대약진이다. 선거 공약에서 과거 여당 때보다 훨씬 더 우 편향된 공약을 내세운 자민당이 재집권함으로써 일본의 향후 행보에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향후 일본의 변화 및 한·일 관계 등에 대해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7일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기묘한 선거다. 300석을 두고 다투는 지역구 선거에서 자민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은 각각 43%, 23%였으나 의석수는 자민당 237석(79%), 민주당 27석(9%)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더구나 선거 직전에 실시된 아사히신문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자민당과 민주당은 각각 21%, 15%로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결과는 압승과 참패로 갈렸다.
※ 기묘한 선거탓, 지지율 크게 웃도는 의석수
-자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배경은 무엇인가.
“단순한 자민당의 압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실정 탓에 자민당이 반사이익을 거둔 것이다.”
선거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는 “자민당이 신임(信任)을 얻은 것이라기보다 민주당의 3년간 혼란에 대해 노(No)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지지가 완전히 자민당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게 된 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나.
“가장 큰 원인은 소선거구제에 있다.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될 공명당의 지원을 받았다. 공명당의 지지기반인 창가학회 멤버들이 공명당 출마자가 없는 지역에서 자민당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 선거에 총 12개 정당이 참여했을 정도로 민주당 대 비민주당 구도가 강해지면서 반민주당 흐름이 거세지고 그 와중에 자민당 후보들은 1위로 올라섰다.”
-민주당의 실정이란.
“크게 세 가지다. 민주당이 복지관련 공약을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 첫째다. 둘째는 공약에는 없었던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당내 오자와(小澤一郞) 그룹이 탈당함에 따라 나타난 자중지란이다. 민주당이 리더십 부재의 아마추어 정권이었다는 점을 셋째로 꼽을 수 있겠다.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 사후수습 미흡, 독도·센카쿠열도 및 미·일 관계 등 외교문제 관리 소홀은 물론, 이번 선거도 철저한 준비 없이 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영향이 없었나.
“물론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한국 대선에서는 북풍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나 중국과의 외교 갈등, 북한의 미사일 등, 이른바 일본판 북풍이 불어 안보를 강조하는 자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 자민·공명 연립도 자민 압승 요인
-자민당은 단독 과반을 얻었는데도 공명당과 연립정부를 세운 까닭은 무엇인가.
“앞서 거론한 것처럼 자·공 연립은 선거전에서도 이미 작용했다. 자·공 연립이 아니었다면 자민당의 압승은 어려웠다.”
-극우 노선을 앞세워 54석을 얻은 일본유신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자·공 연립을 축으로 삼아 다른 정당과는 부분적인 정책연합이 예상된다. 헌법개정, 안전보장 등 국가의 기본정책에 대해서는 유신회와 협조할 것이지만 그 정도는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유신회도 독자적인 제3세력으로서 힘을 발휘하려면 기존의 지지자들을 고려해 자민당과 완전히 일치하는 정책결합은 꺼릴 수 있다. 지지자들이 자민당으로 빨려 들어가는 매몰현상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 아베·자민당 정권의 재등장을 크게 우려하는 이유는 자민당의 극우적인 선거공약이다.
“핵심 내용은 전쟁포기·비무장을 담은 9조를 포함한 헌법개정,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의 안전보장정책과 근린제국조항 수정,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1993) 및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담화(1995) 폐기 등 퇴행적인 역사인식, 독도·센카쿠열도에 대한 초강경정책이다. 그리고 무제한 양적완화 및 엔저·인플레를 유도하는 경제활성화책도 담겼다.”
※ 우려되는 자민당의 퇴행적 노선
-오는 26일 출범하는 아베 정권은 공약을 바로 실천할 것으로 보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선 헌법개정 발의조건인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은 중의원의 경우(320석) 자·공 연립이 325석을 확보해 가능해졌으나 참의원에서는 자·공 연립이 3분의 2에 훨씬 못 미친다. 따라서 내년 7월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또다시 압승을 거두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사실 공약과 실천은 다르다. 공약대로 한다면 일본 내부에서조차 역풍이 불 것이다. 예컨대 센카쿠에 공무원을 상주시키는 등의 강경조치는 중국의 반발을 부를 것이고 군사충돌도 예상된다. 이 경우 중국시장에서 일본상품, 투자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일본 재계가 크게 반발할 것이다.
더구나 극우공약 이행은 동아시아 질서교란이나 다를 바 없다. 일본 유권자들 역시 자민당의 공약 중 안보, 과거사, 영토 등과 관련된 내용보다 경제활성화책에 거는 기대가 훨씬 컸을 터다. 아베 총재 역시 선거가 임박하면서 고노담화 폐기론에서 조금씩 벗어나 ‘유식자(有識者, 전문가)에게 검토를 요구하겠다’는 쪽으로 자세를 낮춘 바 있다.”
-자민당이 집권함에 따라 기존 민주당의 경제정책도 바뀌는 게 적지 않을 것 같다.
“소비세는 민주당이 자민당과 더불어 추진했기 때문에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경우는 자민당 지지세력 가운데 농어촌 이익집단이 적지 않아 쉽게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경제활성화책으로 무제한 양적완화, 인플레 정책, 공공투자 확대 등은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다. 이 때문에 엔화가치가 하락해 한국으로서는 수출에 적지 않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적어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극우노선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시바(石破茂) 자민당 간사장도 17일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때 진정한 정권 탈환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극우공약은 뒤로 미루고 경제활성화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만일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 일본현대사는 ‘전후 체제 전체의 틀 변화’로 이어지는 엄청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베 정권이 당장은 극우 노선을 펼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내년 2월 22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공약대로 이행할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다만 행사의 규모 및 주관자와 참여 인사들의 면면이 중요할 것이다. 만에 하나 아베 신임 총리가 주관한다면 그가 사흘 뒤 열릴 한국의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겠나.”
※ 당장 극우로 치닫지는 않을듯
-2월 22일 행사가 아베 정권의 입장을 살필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 같다.
“아베의 자민당도 한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는 한국이 일본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다. 좀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유연성과 여유를 갖는 폭 있는 대일정책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실 독도를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어 외교청서, 방위백서 등에서 통상적으로 그렇게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인내해야 할 부분과 반드시 강하게 대응해야 할 부분을 잘 구분해서 임해야 한다. 실용적인 대응이 요청된다.
일본 내에서도 침략사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다양한 역사인식이 있음을 감안할 때 일본군 위안부, 역사 이슈 등은 인류 보편적 규범의 문제로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베·자민당의 재등장은 분명 일본의 극우보수화 경향을 가속시킬 것이지만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교수는 경제활성화대책이 기대만큼 효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자민당에 대해서도 국민은 등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며 “아베·자민당 정권의 단명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원덕 교수(프로필)
이원덕(50) 교수는 국내 일본학연구계의 중견이자 연구자 이상으로 ‘일본공간’ 편집인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일본공간’은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의 대표적인 반연간잡지로 2005년부터 발행돼 왔으며 국내외 일본 전문연구자는 물론 일본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을 독자로 삼아 국내에서 그리 흔치 않은 일본학 연구담론 생산현장이다.
이 교수는 “학술지가 범람하는 시기에 독자를 확보하지 못하는 성과 중심의 연구논문보다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것을 존립목표로 삼고 있다”고 소개한다. 한국의 일본학 연구의 방향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지나치리만큼 관계사가 중심이 돼 왔는데 앞으로는 후기 산업사회 일본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비교론적 관점에서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일본공간’의 편집 방향도 그렇게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 유학해 ‘한일회담 외교문서 분석’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현직에 있다. 주요 연구업적으로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을 비롯해 공저로 ‘한일회담과 국제사회(1·2)’ ‘한일신시대를 위한 제언’ ‘박정희 시대의 한일관계의 재조명’ 등이 있다.
원문보기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732232&cp=nv
출처 : 국민일보 기사보도 2012.12.1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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