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일보] 任員 연봉, ‘가치 창출’ 측면서 봐야/유지수 총장

등기임원 262명의 연봉이 공개됐다. 5억 원 이상이 그 대상이다. 많은 국민이 ‘헉’ 소리 나는 고액 연봉에 불쾌감부터 보인다. 남이 많이 받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리 관대하지 못한 편이다. 선진 외국도 예외는 아니다.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외국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이 망하는데도 많은 돈을 챙겨가는 경영자들을 도마에 올린다. 다만,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차이점은 비판의 관점에 있다.

선진국에서는 고액 연봉자가 CEO든 현장 근로자든 ‘연봉 대비 가치창출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전히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논의가 이뤄진다. CEO가 받는 연봉이 문제가 아니라 그만한 가치를 하고 있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반면 우리는 받는 액수가 문제다. 그저 많이 받으면 문제가 된다. 사회 정서상 많이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연봉 액수와 가치 창출을 연계해서 논의하는 걸 볼 수 없다.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혼란스러운 가치관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도 막상 내용상으로는 사회주의적 사고와 기준으로 비판을 한다. 중국과는 대조된다.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체제이면서 경제에 관한 한 자본주의 사상이 적용된다. 철저한 경쟁논리와 능력주의로 사회가 돌아간다. 우리는 기업에 사회주의적 잣대를 들이대 평가를 하니 기업인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적게 받는 CEO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고 고액 연봉을 정당화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고액 연봉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고액 연봉만큼 기업에 기여를 크게 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이 평가의 주체는 주주(株主)가 돼야 한다. 국내 우수 기업의 경우 외국인 기관투자가가 대개 40% 이상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 기업 임원(任員)의 고액 연봉이 낭비라면 철저히 수익을 따지는 외국인 기관투자가가 가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적어도 정치권에서 기업 CEO의 고액 연봉을 정치화해선 안된다. 돈 많이 받는 기업인이 얻어맞으니 일반인은 속이 시원할진 몰라도 대한민국의 속이 알차게 되는 건 아니다.

기업을 이런 식으로 내몰아선 안된다. 며칠 전 한 기업인을 만났더니, 자신은 이미 반(反)기업 정서와 제도 때문에 태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고 분개했다. 반기업적인 시각이 과연 국익에 도움되는지 자문(自問)해야 한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압박받고 있는 기업인에게 고액 연봉으로 또 사기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만약 CEO가 필요 이상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다면 기업의 연봉을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학계와 증권계에서 깊이있게 논의해야 한다. 임원의 고액 연봉 문제는 여의도 정치권에서 논의할 사안은 아니다. 포퓰리즘을 의식한 ‘기업때리기’는 결국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이왕지사, 기업인의 사기를 살리는 논의도 했으면 한다. 우리도 영웅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번에 연봉이 공개된 등기임원 대부분이 전문 경영인이다. 대학을 나와 아무런 기반이 없던 사람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기업 CEO가 되기까지에는 치열한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십 년 간 휴일도 없이 일한 사람들이다. 혁혁한 실적이 있어 CEO가 된 것이다. 이 생존경쟁에는 학연도 지연도 작용하지 않는다. 오직 능력과 열정에 의해 판가름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선망의 눈으로 봐야 한다. ‘CEO 영웅’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40101073137191002

출처 : 문화일보 기사보도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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